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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03. 2022

결혼 준비 부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삶의 중대한 일은 항상 예기치 않을 때 찾아온다. 내 아내 케이트(Kate)와의 만남도 그랬다.


드라마 미생이 한창 인기였던 2014년, 나는 신입사원처럼 정장을 입고 교회에서 봉사하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는 미국 시애틀에 사는 재미교포였고 아내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예쁘지만 도도하지 않고 웃음이 넘치던 그녀. 귀족 같은 우아함을 지녔지만 콩쥐처럼 부지런하게 봉사하던 그녀.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내를 보고 나서야 난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예쁘고 착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27년간 살면서 배우고, 익히고, 얻고, 깨달은 것들을 총동원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다. 아니, 노력이 저절로 됐다. 절대 놓칠 수 없었으니까. 공부할 때는 그렇게 안 새지던 밤이 저절로 새지고, 그렇게 말없는 내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그녀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귀 기울어졌고 그녀의 작은 손짓에 감동했다. 그런 나의 진심에 그녀도 감동했던 건지, 2015년, 마침내 그녀와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여자를 만나도 되나?'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한 여름밤의 꿈처럼 믿을 수 없는 연애를 하는 사이 금방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꽃다운 20대에 나를 만나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고, 내게는 평생 그녀를 굶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그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호강은 못 시켜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러 갈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이민 온 지 2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봐도 너무나도 예쁜 그녀. 그리고 그렇게 예쁜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신 그녀의 아버지.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녀석이 미국에서 와서는 결혼을 하겠다니. 누가 봐도 일단 반대, 결사반대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7년 전 그녀가 기적처럼 내게 마음을 열어줬던 것처럼, 그녀의 아버지도 내가 당신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셨다. 할렐루야. 이건 신의 개입이 없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우리 둘은 먼저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그 사정이 임신은 아니다) 목사님이신 내 아버지가 주례자로, 교회에서 함께 봉사를 하던 친구 부부가 증인으로 혼인신고서에 서명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법적 부부가 되었다.




2018년 10월 23일, 미국에서 역사상 최고 금액의 복권 당첨자가 나왔다. 오늘자 환율로 자그마치 2조 144억 원의 당첨금을 거머쥔 단 한 사람의 당첨자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2022년, 그보다 더 큰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바로 케이트가 내 아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복권을 사면 설렌다. 당첨금으로 얼마나 멋진 삶을 살지 꿈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막상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아마 나는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두지 못한 것들 때문에 불안해질 것 같다. 누구를 고용해야 하지? 변호사? 회계사? 경호원? 바로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가족들은? 기부는 얼마나? 직장은 휴가를 내야 하나? 아니면 당당하게 사표를 던져? 따위의 생각을 말이다. 큰돈이 생겼으면 큰돈에 걸맞은 계획이 있어야 한다.


2022년, 나는 케이트가 내 아내가 되는 행운에 덜컥 당첨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는 이 축복에 걸맞은 계획이 있나? 나는 케이트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나? 복권 당첨자가 그렇게 큰돈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도 케이트처럼 큰 가치가 있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연애할 때는 마냥 좋았다. 우리 둘의 미래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막상 케이트와의 결혼이라는 행운이 확정되고 나니 불안함이 몰려왔다. 나는 이 행운을 제대로 누릴 준비가 되었나? 나의 행운이 케이트의 불행이 되지 않게 할 계획이 있나?




혼인신고를 한 후 결혼식은 1년 후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케이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까지 마지막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며 지내기로 했다. 이제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는데 바로 생이별을 해야 한다니. 그것도 견우와 직녀처럼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결혼해서 기쁘자마자 슬퍼지려 했지만 우리는 서로 반지를 나눠 낀 채 결혼식 전까지의 시간을 서로 알차게 보내기로 다짐했다.


나는 케이트와 함께 살 집으로 홀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곧 케이트와 함께 하게 될 진짜 결혼생활을 준비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결혼에 대해 겉으로는 "필승! 아이 캔 두!" 외쳤지만 속으로는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지 말입니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나는 육군이라 12척의 배는 없지만 1년 후 결혼식장에서 장인어른께 케이트의 손을 건네받을 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분에 넘치는 케이트와 결혼을 하게 됐고, 1년 간의 시간이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이 그녀와의 결혼이라는 황홀한 선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대가로 선고받은 집행유예로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공부하고, 배우고, 기록하기로 했다. 케이트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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