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일은 항상 예기치 않을 때 찾아온다. 내 아내 케이트(Kate)와의 만남도 그랬다.
드라마 미생이 한창 인기였던 2014년, 나는 신입사원처럼 정장을 입고 교회에서 봉사하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는 미국 시애틀에 사는 재미교포였고 아내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예쁘지만 도도하지 않고 웃음이 넘치던 그녀. 귀족 같은 우아함을 지녔지만 콩쥐처럼 부지런하게 봉사하던 그녀.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내를 보고 나서야 난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예쁘고 착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27년간 살면서 배우고, 익히고, 얻고, 깨달은 것들을 총동원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다. 아니, 노력이 저절로 됐다. 절대 놓칠 수 없었으니까. 공부할 때는 그렇게 안 새지던 밤이 저절로 새지고, 그렇게 조용한 내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그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어졌고 그녀의 작은 손짓에 감동했다. 그런 나의 진심에 그녀도 감동했던 건지, 마침내 그녀와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여자를 만나도 되나?'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한 여름밤의 꿈처럼 믿을 수 없는 연애를 하는 사이 금방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꽃다운 20대에 나를 만나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고, 나에게는 평생 그녀를 굶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그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호강은 못 시켜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러 갈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고, 미국으로 이민 온 지 2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봐도 너무나도 예쁜 그녀. 그리고 그렇게 예쁜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신 그녀의 아버지.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녀석이 따님을 달라니. 누가 봐도 일단 반대, 결사반대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7년 전 그녀가 기적처럼 내게 마음을 열어줬던 것처럼, 그녀의 아버지도 내가 당신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셨다.
장인어른의 결혼 허락 후, 우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은 1년 후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나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케이트는 나를 따라 이민 가기 전 마지막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는데 견우와 직녀처럼 자그마치 1년이나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슬펐지만 우리는 서로 반지를 나눠 끼고 1년 후를 기약했다.
미국으로 홀로 돌아온 나는 사실 결혼에 대해 겉으로는 자신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케이트가 내 아내가 되는 행운에 덜컥 당첨이 되어버리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내게는 이 축복에 걸맞은 계획이 있나? 나는 케이트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나? 연애할 때는 마냥 좋았다. 우리 둘의 미래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막상 케이트와의 결혼이라는 행운이 확정되고 나니 불안함이 몰려왔다. 나는 이 행운을 제대로 누릴 준비가 되었나? 나의 행운이 케이트의 불행이 되지 않게 할 계획이 있나?
결혼 생활을 해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결혼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는 건 말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은 나도 케이트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기필코 알아내기로 했다. 케이트를 평생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나에게는 결혼식장에서 장인어른께 케이트의 손을 건네받을 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라 남들이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내 여자에게 어떻게 해주라는 말은 더 그렇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전에 스스로 답을 찾기로 했다. 1년 동안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무엇보다 케이트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어떻게 평생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계획을 세웠다. 이 책은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해가는 나의 솔직한 성장 기록이자, 케이트를 평생 행복하게 하기 위한 나의 마스터플랜이다.
이 책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참고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예다. 누군가 이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행복하게 하기 위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출판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당신이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다면 이 책에 얼마나 좋은 내용이 있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더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부디 이 책이 그런 착한 마음이 결실을 맺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아직 결혼 생활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세운 계획이다. 마이크 타이슨을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둥아리를 한 대 처맞기 전에는." 이것은 결혼생활이라는 현실에 처맞기 전,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나의 그럴싸한 계획이다.
* 이 글은 제가 쓰고 있는 책의 서문입니다. (참고: 내 책의 서문을 작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