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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05. 2022

새 지붕에 50년 무상 A/S라고요?

2020년. 미국 주택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을 때 나는 용감하게 내 첫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용감할 수도 있던 것이 내 눈은 그리 높지 않았다. 더 이상 월세를 내고 싶지 않았고 어떤 집이던 내 집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던가. 처음에는 소박하던 내 눈은 집을 보러 다닐수록 점점 더 높아졌다. 곧 결혼도 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깔끔한 집, 아이가 생기면 초등학교까지는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 눈은 다 고만고만 한가 보다.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집은 다른 사람 눈에도 좋아 보였다. 내가 사고 싶은 매물에 많을 때는 40명 이상의 구매자가 달려들었다. 경쟁이 심해지니 대부분의 주택이 웃돈을 얹어 거래됐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판매자에게 유리한 시장 (seller's market)이었다. 내 중개업자는 지금 시장에는 현금으로 구매하는 사람도 많아서 나처럼 융자를 얻어 구매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21년. 집을 보러 다닌 지 반년쯤 지난 시점. 사고 싶었던 집 20여 곳이 경쟁에 밀려 좌절되고 월세 계약을 연장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예전에 경쟁에 밀렸던 집에서 연락이 왔다. 사기로 했던 사람이 돈을 마련하지 못해 집이 다시 시장에 나올 예정이라고. 그래서 다시 매물을 내놓기 전에 나에게 연락을 한다고 했다. 결국 감사하게도 내가 전에 제시했던 가격보다 조금 더 싸게 시세만 내고 내 첫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완전히 리모델링이 된 집은 아니었지만 2007년도에 지어진 집치고는 내부가 깔끔하게 손봐져 있었다. 안 그랬어도 어떠랴. 난생처음 생긴 내 집이라 마냥 좋았다.




시애틀은 여름 2-3개월 동안은 날씨가 정말 화창하게 좋고, 일 년의 나머지는 항상 우중충 하게 비가 내린다. 그렇게 2021년 시애틀의 우기가 시작됐을 때, 우리 집 2층 천장에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다락으로 올라가 봤고, 아니나 다를까 지붕에서 물이 한 방울씩 새는 곳이 여러 곳 발견되었다. 매매를 하기 전 확인한 집수리 기록에는 고작 반년 전에 지붕을 수리했었다고 나와있었다. 지붕 수리를 맡았던 업체에 연락을 했고, 업체에서 지붕 전체를 교체한 경우가 아니면 A/S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붕 전체를 교체하려면 한국 돈으로 2천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집을 산지 일 년도 안되어 큰돈이 들어가려니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같은 해에 지어진 이웃집들을 보니 그들도 하나 둘 지붕을 교체하고 있었다. 정황상 지붕 전체를 교체할 때가 된 것 같아 씁쓸하지만 지붕 전문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업체를 비교하며 알게 된 것은 대부분 업체들이 전체 지붕을 교체할 경우 25년 무상 A/S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다는 듯 아마 새 지붕은 25년 정도는 거뜬히 버틸 거라고 했다. 아니 잠깐, 우리 집은 지은 지 14년 만에 지붕에 물이 새는데 새 지붕이 25년 정도는 거뜬히 버틸 거라고? 그러면 우리 집은 원래 헌 지붕이었나?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보니 신축한 집의 지붕이 15년 즈음에 새는 건 보통 있는 일이라고 했다. 건축업자들이 최대한 빨리 집을 완공해 팔려고 하기 때문에 지붕 작업을 제대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지붕 전문업체가 제대로 작업을 하면 30년 정도는 거뜬히 버티고, 좋은 자재를 사용하면 50년까지 무상 A/S가 된다고 했다. 세상에 50년이라니. 50년이면 나는 여든 중반이다.


결국 좋은 자재를 써서 50년 무상 A/S가 되는 자재로 지붕을 교체하기로 했다. 50년 안에 지붕 업체가 사라져서 A/S를 못 받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업체가 망하면 자재 제조사에서 A/S를 해준다고 했다. 자재 제조사는 1938년에 상장된 오웬스 코닝(Owens Corning)이었는데, 시가총액 86억 달러, 한화로는 11조 원짜리 회사다. 이런 회사가 망해서 A/S를 못 받으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나 싶었다.




20년. 미국 군인은 최소 20년을 복무해야 은퇴연금을 받는다. 나는 미국 군인이다. 20년을 일해야 한다니, 참 징그럽게도 길다.


30년. 주택 융자는 30년 동안 갚아야 한다. 나는 융자를 얻어서 집을 샀다. 20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30년이라니. 끔찍하다.


50년. 새로 간 지붕에는 50년간 무상 A/S를 해준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건 좀 마음에 든다.


90년. 나는 케이트와 결혼을 했다. 나는 한 120살 정도까지만 살 계획인데, 그러면 케이트는 나와 90년 정도를 같이 살아야 한다. 부디 그 시간이 그녀에게 주택 융자같이 끔찍한 시간이 아니라 무상 A/S가 보장되는 마음 편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평생 비 샐 걱정 없는 든든한 지붕이 되어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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