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한 자세로 책상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다 문득,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집 앞에 있는 오렌지띠어리(Orangetheory)라는 그룹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했다. (나는 미국에 산다)
오렌지띠어리는 2010년에 생긴 미국 피트니스 체인점이다. 현재 23개의 나라에 약 1,300여 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는 뉴질랜드와 일본에 입점해 있다)
클럽 내부는 이름처럼 오렌지 색의 불이 켜져 있고, 클럽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는 중년의 회원이 50% 정도, 나머지는 꽤나 탄력 있는 몸매를 가진 회원들이다. 코치가 마이크로 지금은 무슨 운동을 할 차례라고 알려주면 회원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코치가 알려준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운동하기 때문에 원한다면 60분을 느긋하게 보낼 수도, 혹은 녹초가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로잉머신과 트레드밀에서)
오렌지띠어리의 간판 클래스는 코치가 그룹으로 이끄는 60분짜리 HIIT (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이다. 트레이닝의 목표는 심박수를 높여 EPOC (Excess Postexercise Oxygen Consumption)을, 한국어로는 "운동 후 초과 산소 소비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것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사람이 자신의 최대 심박수 84% 이상에 도달하면 신체에 필요한 산소량을 운동 중에는 채울 수가 없다. 그래서 운동 중 모자랐던 산소를 운동 후에 채우게 되는데, 이러면 운동이 끝난 후에도 칼로리를 소모하게 된다. 운동 후에도 칼로리 소모가 지속될 수 있도록 운동 중 심박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의 핵심이다. 오렌지띠어리에서는 최대 심박수의 84-91%를 오렌지존(zone), 92-100%를 레드존이라고 하는데, 60분 운동에 최소한 12분을 오렌지/레드존에 머무를 것을 권장한다.
무료 첫 클래스를 듣고 나니 녹초가 되어 버렸고 (운동 중 차고 있던 심박수측정기 데이터를 보니 60분 중 27분 동안 최대 심박수의 84%를 넘겼다고 한다), 그 맛에 덜컥 회원 등록을 해버렸다.
회원권은 생각보다 비쌌다. 오늘 환율로 약 27만 원 ($207.90). 미국 헬창들이 가득한 헬스클럽에 등록하는 비용의 약 3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심박수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운동을 하려면 심박수측정기를 구입해야 하는데, 이게 또 17만 원($130.90)이나 한다. 회원 약정서에 사인을 하기 전, 나는 그냥 헬창 클럽에나 다닐까, 그냥 밖에서 달리기를 할까, 여러 번을 고민을 했고 손을 떨었지만 결국 회원권을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서 클럽에서 받아 온 클래스 스케줄을 펴놓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차피 낸 회원권, 본전 이상을 뽑아내 보자!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매일 아침 5시 클래스를, 토요일에는 아침 6시 15분 클래스를 듣기로 했다. 일요일은 휴식. 나는 다짐했다. 회원권이 너무 싸다고 느껴질 만큼 자주 운동을 하고야 말 거라고.
회원권의 본전을 뽑기 위해 '어떻게 하면 클래스 하나라도 더 들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던 중 문득,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클럽의 일주일 스케줄을 보니 하루 평균 11개의 클래스, 일주일에 총 79개의 클래스가 있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9시 15분까지, 짧게는 45분, 길게는 1시간 반짜리 클래스들이 스케줄에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클럽에서는 27만 원짜리 회원권을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스케줄을 만들어 놓았다. 한 달에 27만 원짜리 회원권을 위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내 아내는 오렌지띠어리 회원권이 아니라폴챙이라는 사람의 평생 회원권을 구입했다. 그것도 한 달에 27만 원 정도가 아니라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자신의 평생이라는 값을 지불하고서. 나는 한 달짜리 회원권에 사인을 하기 전에도 그렇게 고민을 했는데, 아내는 무를 수도 없는 나와의 결혼이라는 평생 회원권에 아무 고민 없이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데 평생 회원권을 구입한 아내에게 나는 어떤 스케줄을 주었을까. 나는 하루에 11번은커녕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오롯이 아내가 나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적이 있었나. 지금은 바쁘다고, 다 당신을 위해 내가 일하는 거라고 말은 하면서 내 시간을 내어주지 않진 않았나. 그래도 아내는 묵묵히 기다려줬다. 글 쓰라고, 오빠 해야 할 거 하라고. 아내는 본전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밤엔 이렇게 착하고 순진한 내 아내를 위해 다짐해본다. 이 사람의 본전은 내가 꼭 뽑게 해 주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