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은 냄새가 좋다. 지나가다가 치킨 냄새가 나면 괜히 먹고 싶어 진다. 특히 배고플 땐 치킨 냄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사실 배가 안 고픈 날, 혹은 치킨이 당기지 않은 날이라도 막상 먹으면 또 잘 먹히는 게 치킨이다. 하지만 막상 먹다 보면 기가 막힌 냄새만큼 맛있지 않을 때도 많다. 기름기가 많은 치킨은 여드름도 나게 한다. 근데 살다 보면 치킨이 생각나고, 다시 주문하고, 때로 실망한다.
내 아내는 치킨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배가 고플 때 갓 만들어진 치킨이 있으면 잘 먹는다. 근데 요 며칠간 아내는 치킨이 별로인가 보다. 아마 집에 갓 튀긴 치킨은 없고 냉장고에 들어 있는 먹다 남은 치킨만 있어서 그런가 보다.
아내는 아마 생각할 거다. 냉장고에 오래 두고 싶지 않은데 꺼내먹어야 하나. 어떻게 데워먹어도 처음 먹는 것처럼 신선하고 맛있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먹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 안 먹으면 냉장고 안에서 상할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들을 말이다. 냉장고 안의 치킨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까.
하지만 착한 아내는 또 이런 생각을 할 거다. 치킨은 그냥 치킨일 뿐인데, 갓 만들었을 때도, 냉장고에 들어갔을 때도, 며칠이 지났을 때도 같은 치킨인데. 내가 배고플 때, 배부를 때, 기분이 좋을 때, 안 좋을 때에 따라 달라지는 내 시각의 차이 아닐까. 내 착한 아내는 치킨에게도 착하다. 그런 아내는 측은한 치킨을 떠올리며 냉장고 문을 연다.
나는 치킨이다. 냄새로 아내를 유혹해 한 입을 베어 물게 했지만 냄새만큼 기가 막히진 않은 치킨. 금방 질려버려 냉장고 안에 넣어버리고 싶은 치킨. 처음 냄새를 맡았던 그때로 되돌리기란 불가능 해 보이는 냉장고 속 차가운 치킨.
나는 군침 돌게 만드는 광고 속 치킨이다. 광고를 보는 사람은 저 바삭하고 매콤한 치킨을 한 입 가득 베어 무는 배우가 부러워지게 만드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치킨. 하지만 정작 카메라 앞에서 치킨을 먹는 그 배우는 이미 식어버린 치킨을 억지로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맛있어 보이게 먹어야 하는 게 그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나는 남들 보기에만 번지르 해 보이는 광고 속 치킨이길 그만 두기로 했다. 그 대신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되기로 했다. 겉보기에는 마르고 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겉 부분을 벗겨내면 그 안에 촉촉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간직한 그런 고급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저게 뭐야!" 하며 인상을 찌푸려도, 그 진가를 아는 미식가는 그 안에 담긴 것을 떠올리며 흐뭇해지는 그런 고급 스테이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치킨이 굳은 마음을 먹는다고 갑자기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진 않을 거다. 하지만 하늘이 감동해 진짜 그런 마법이 일어날 때까지, 아내에게 적어도 식은 치킨만은 먹이지 말아야겠다. 항상 따끈하고 바삭한, 그나마 몸에 좋은 포도씨유에 튀긴 치킨을 대접해야겠다. 곰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던데, 치킨은 무얼 먹어야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