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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니다"의 맛

by 폴챙


1988년, 현행 표준어 규정이 고시되었고

1989년, 현행 표준어 규정이 시행되었다.


항상 "읍니다"와 함께했던 "습니다"는

1989년에 친구를 잃었다.


이제 "읍니다"는

철자 오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읍니다"에게

아무도 뭐라 그럴 수 없게 해 준

사람이 있다.


"읍니다"가 아직 철자 오류가 아닐 시절,

"읍니다"와 "습니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을 때,

그 사람은 "읍니다"를 선택해주었다.


그의 선택은 아주 적절했고,

표준어가 변했어도

여전히 꼭 알맞다.


그리고 그가

"읍니다"의 맛을 알려주었기에,

그의 글에서만큼은 "읍니다"가 항상 옳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1]




나에게도 "읍니다" 같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때도

내 삶에 가장 적절했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내게 꼭 알맞다.


내 삶에서 그 사람은 항상 옳다.



[1] 윤동주,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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