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 시애틀 변두리에서 브런치에 글 쓰는 폴챙입니다.
혹시 오늘도 브런치에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작가님이신가요? 혹시 그러시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저도 자주 그렇다고, 그런 건 당연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거창한 계획부터 세워야 하는 성격인데요. 글쓰기를 시작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들곤 합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멋진 문장으로 가슴을 울리는 에세이, 미국 이민자의 설움을 들려주는 이민 생활 이야기, 미국에서 온라인 사업을 하던 이야기, 책리뷰, 재밌게 옛날이야기처럼 풀어서 들려주는 성경책 속 이야기, 나의 투자 이야기 등등. 쓰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았지만 막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막 쓰다 보면 내 브런치 브랜딩이 이상하게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죠.
어렵게 합격한 브런치 작가. 시작부터 체계적으로 멋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매거진을 만들고, 매거진에 글이 쌓이면 브런치북으로 만들고, 그렇게 언젠간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브런치북을 하나씩 쌓아가는, 그런 멋진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처음 쓴 글은 2021년 5월 15일에 발행한 <평범한 30대 남자의 영양제 루틴>이라는 글이고, 두 번째 글은 5일 뒤에 발행한 달러/원 환율 계산 방법을 설명하는 <시가총액이 달러로 얼마라고? 천억? 일조?>라는 글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영양제나 건강에 대해 글을 쓰지도 않고, 영어공부나 투자에 관한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첫 두 글 이후 개인적인 주식 투자를 통한 노후준비 이야기를 쓰기도, 세바시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여러 주제로 매거진을 만들었다고 지우고, 글을 발행했다 취소하기도 했죠. 지금까지 발행한 글이 125개를 넘겼지만 부끄러워 다시 내린 글도 많고, 책 출간은커녕 아직 제대로 된 브런치북한 권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아직도 매번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고, 작가로서 내 글의 주제, 나의 브랜드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여러 주제로 부족한 글들을 써대는 저를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800명을 넘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그저 제 글에 방문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말이죠.
제겐 한분 한분 너무 소중하지만, 어찌 보면 몇 천 명, 혹은 몇 만 명 구독자가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에 비하면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브런치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는 800명 구독자가 정말 많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랬으니까요. 구독자가 10분만 넘었으면, 100분만 넘었으면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연연해도 늘지 않는 구독자수에 연연하지 않고 글에 집중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출간 작가도 아니고, 어떤 공모전에 합격한 적도 없고, 심지어 한국에서 학력은 초졸이라 글을 쓸 때마다 영한사전, 국어사전,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가며 어렵게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렇게라도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구독자 800명 어떻게 넘겼냐고 물어보시면 "그냥 글을 썼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글을 쓰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인터넷에서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브런치에 댓글도 잘 안 남기고 가끔 좋은 글을 보면 조용히 라이킷만 누르곤 합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뭔가 대단한 걸 가르쳐 드릴 순 없지만, 저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제 이야기는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매거진 이름이 《평범한 사람의 브런치 사용설명서》인건 "저는 브런치를 이렇게 사용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어쩔 땐 자료조사를 많이 하고 쓰다가 재미없는 진지한 글이 나오기도 하고, 어쩔 땐 지금처럼 가볍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듯 편하게 쓰기도 합니다. 어떻게 어떤 글을 쓰던 항상 다시 읽어보면 부끄럽긴 마찬가지고요.
저에게는 글을 한 편도 안 쓰고 이야기를 청하셔도 되지만, 저는 글쓰기도 일단 많이 해보는 걸 권해드립니다. 일단 많이 써보면 내 안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알게 되니까요. 일단 써보면 내 안에 대단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던 게 별 게 아닐 때도 있고, 어쩔 땐 그냥 생각나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할 말이 굉장히 많아지는 글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글을 쓰다 보면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통계"라는 기능을 통해 어떤 글이 먹히는 글인지, 어떤 키워드가 독자들이 나를 찾게 만드는 키워드인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작가로서 브랜딩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일단 글쓰기를 계속하시기를, 오늘도 글쓰기를 시작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예전 학교를 다닐 때 시험공부를 미루다 미루다 전 날 밤에야 공부를 시작하던 적이 많았는데요. 미리 시작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나 혼자만 이러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내일 시험을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 친구가 나도 내일 시험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고, 미칠 것 같다고 연락이 오면 굉장한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동병상련의 위로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글쓰기가 어렵고, 오늘도 글쓰기 때문에 끙끙 앓고 있습니다. 오늘도 작가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