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찌질함을 드러내는 3가지 단계

by 폴챙



남편과 함께 '찌질의 역사'라는 웹툰을 봤다. 난 읽는 내내 생각했다.


누가 내 남편 얘기를 웹툰으로 그려놨네?


그런데 의아하게도 남편도 웹툰을 보는 내내 찌질한 남자 주인공의 남자답지 못한 행태와 유치함에 분노와 짜증을 금치 못했다. 자기 얘기인데 왜 그럴까.



그들의 가장 큰 결핍은 자신이 얼마나 찌질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1]






1. 찌질한 남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내가 다 맞춰줄게



찌질한 남자는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가 부족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자신을 포장하고 부풀려 좋은 남자인 척한다. 어쩌면 남자의 이런 행동양식에 거짓말이라는 표현은 좀 가혹할지 모르겠다. 내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과한 자신감, 또는 모든 걸 주고 싶은 부푼 마음이라고 해두자.


어쩌면 연애 초기에는 본인이 되고 싶은 멋진 남자처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파민이 뿜뿜 뿜어져 나올 때 호르몬의 도움으로 말이다.


한 여자가 마음에 들어왔을 때 남자는 좋은 상황만 생각한다. 내 마음이 언제나 지금과 같을 거라고,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음이 평생 유지될 거라고 착각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한 후에도 밤을 지새우며 이 여자의 말을 재밌게 들어줄 수 있을 거 같고, 서로 의견이 달라도 이렇게 예쁜 여자의 말이라면 내 의견 따위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굽힐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내 자존심보다는 그녀를 배려하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좋아해 주며, 그녀가 존재 그대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믿음직하고 듬직하게 곁에 있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평생 "을"로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가수 윤종신이 괜히 '오르막길'이라는 노래를 만든 게 아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남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찌질해진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고, 약속했다면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지키지 못했을 땐 진심으로 사과하자.






2. 찌질한 남자는 약속을 안 지켜놓고 되려 화를 낸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예전 <코미디빅리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갑과 을>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항상 갑은 을에게 "딱 보면 몰라?"라는 대사를 하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찌질한 남자도 그렇다.


도파민이 충만한 연애 때는 그녀를 평생 "갑"으로 모실 것 같던 남자가 결혼 후 돌변한다.


"내가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매일 대화할 시간이 있을 거 같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집에 왔을 때만은 좀 가만히 놔둬야 할 거 같지 않아?"

"딱 보면 몰라?"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그래서 결혼해 줬더니 이제와 딴소리다.


가수 포맨이 '미친거니'라는 노래를 괜히 부른 게 아니다.


미친거니 이제 와서 딴소리야


찌질한 남자도 미쳤다. 딴소리가 종족 체질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왜 방귀 뀐 놈이 성낼까? 창피해서 그렇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화냄으로 가리려고 한다. 막장 드라마를 봐도 거짓말하거나 바람피우다 들킨 남편이 되려 아내에게 화를 낸다. 지가 잘못해 놓고, 약속을 못 지켜놓고는 되려 화낸다.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몰랐어?"


당연히 몰랐다. 알았다면 너라는 인간과의 인연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찌질한 남자는 자기 상상 속에만 있는 멋진 남자의 모습을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창조해 낸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신의 본모습을 들켜버렸을 때 자기 멋진 모습을 마치 아내가 없애버린 것처럼 화를 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람을 이르는 말이다. 찌질한 남자는 적반하장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분수란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를 수 있는 한계를 뜻한다. 즉, 적반하장 짓거리에도 사람이라면 넘지 못할 선이 있다는 말이다. 찌질한 남자는 사람이라면 넘지 말아야 할 이 선을 넘는다. 아주 그냥 인간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땐 내가 내 모자람을 모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자.


만일 그녀가 내가 약속했던 모습의 부재로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내주자. 보내주기 싫다면 내 모습을 뿌리부터 바꾸고 그녀의 자비를 구하자.


그리고 그녀가 고맙게도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면, 나 때문에 생긴 불신이 조금씩 없어지도록 진심 담긴 노력을 죽을 때까지 보여주자.






3. 찌질한 남자는 자신의 찌질함을 아내 탓으로 돌린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찌질한 남자는 자신의 찌질함을 그녀 탓으로 돌린다.


자신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건, 그렇게 속 좁고 지밖에 모르고 대접받는 것만 좋아하지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그녀 탓이라고 한다. 뼛속 깊이 박힌 자신의 찌질함을 20-30년 모르고 살다 만난 사람 탓으로 돌리다니. 하다 하다 자기 혈액형도 아내 탓이라고 할 사람이다.


찌질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가 뭘 해주고 싶어지는 것도 남자 나름이다. 상종 자체가 싫은 남자에게는 아무것도 해주기 싫다.


자기 남자가 못나 보이길 바라는 아내는 없지만, 남자가 워낙 못나면 손 쓸 도리가 없다. 손을 쓰려면 손을 대야 하는데 손끝조차 닿는 게 끔찍한 걸 어쩌란 말인가.


남자가 자신의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만약 내 모습이 그렇다면 솔직하게 인정하자. 회복은 내 본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똑바로 직시하고 내 모습에 책임을 지자.






마지막으로 오해가 있을지 몰라 밝힌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남편 얘기가 아니다.


우우거리며 뛰어다니면서 배고프면 화내고 강자 앞에서는 쭈그러들고 약자 앞에서만 강해지는 유인원도 아니고,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의무교육만 9년이나 받는 요즘 인간이 그럴 리 없다.



[1] ≪씨네21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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