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내 말을 듣지를 않는다

by 폴챙



남편은 도통 아내 말을 듣지 않는다


"듣다"라는 단어는 주로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1」 사람이나 동물이 소리를 감각 기관을 통해 알아차리다.

「2」 다른 사람의 말에 스스로 귀 기울이다.

「3」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다.


남편은 전부 다 못한다.






1. 남편은 사람이 아니다


듣다 「동사」
「1」 사람이나 동물이 소리를 감각 기관을 통해 알아차리다.


예문) 잠결에 남편 숨 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나는 다시 곤히 잠에 들었다.


토끼가 사람 발걸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 돌리듯, 소리 알아차리는 걸 듣는다고 한다.


남편은 이 기능이 없는 것 같다. 아내가 말을 해도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인기척조차 못 느끼는 것 같다. 소리를 안 지르려야 안 지를 수가 없다.


이렇게 듣지 못하는 남편일 경우 두 가지 진단을 내릴 수 있다.



(1) 남편은 소리를 듣는 감각 기관이 없거나 기능을 못한다.


그런데 남편은 귓구멍이 달렸고 귓구멍이 물리적으로 막히지도 않았다. 그러니 1번은 아닐 경우가 높다.



(2) 남편은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다.


듣지 못하는 남편은 아마 이쯤일 거다. 사람이나 동물을 제외한 생물체에는 이물질이나 곰팡이 같은 균류, 암모니아를 배출하는 단세포 생물체 같은 원생동물류, 그리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류가 있다. 이 중에서 내 남편을 유추해 보자. 나무와 꽃이 속한 식물류도 생물체지만 남편은 식물처럼 아름답지 않으니 제외한다.






2. 남편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듣다 「동사」
「2」 다른 사람의 말이나 소리에 스스로 귀 기울이다.

예문) 내가 5분 동안 말을 했는데 남편이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죽을 때가 다 됐나 보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소리에 스스로 귀 기울이지 못해 듣지 못하는 남편의 경우 두 가지 진단을 내릴 수 있다.



(1) 남편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이 인간은 아내에 대한 존중은커녕 같은 종족으로서 인류애도 없다.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아주 그냥 인간이 아니다. 아, 맞다. 내 남편은 사람이 아니라 미생물이었던가.



(2) 남편은 나와의 대화에 노력 따위를 할 생각이 없다.


듣는다는 것은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기울이다라는 말은 더 잘 듣기 위해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갖다 대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한쪽을 낮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관심을 한 곳에 기울이는 것처럼 "정성이나 노력 따위를 한 곳으로 모으다"라는 뜻도 있다.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나 소통에 어떤 정성이나 노력을 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아내에게 대화를 시도할 때는 배고프고 아프고 졸릴 때처럼 아주 원초적인 욕구에 의해서다. 이건 뭐 거의 신생아다. 신생아는 사랑스럽기라도 하지. 신생아적 대우는 자기 엄마한테나 가서 받지 왜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다.






3. 남편은 내 말만 안 듣는다


듣다 「동사」
「3」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다.


예문)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 안 그럼 못된 남편이랑 결혼한다.


듣는다는 말의 세 번째 뜻은 들은 말을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모르는 아저씨를 따라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놈과 결혼하지 말라던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다.


남편은 무언가를 해달라는 아내의 말을,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내 말은 안 들으면서 남의 말은 잘 듣는다. 친구 말 듣고 보증서주고, 엄마 전화 한 통에 아내와 약속은 금방 잊고 냉큼 달려간다. 친구 말 듣고 투자해 날려먹고 우리 식구는 편한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게 한다.


아내가 어떤 음식 좋아한다는 말은 안 들리면서 직장 여직원이 무슨 디저트 좋아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어차피 듣지도 못하는 귀퉁이를 한 대 올려붙이고 싶다.






이 얘기가 내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괜스레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아내는 어제도 내 저녁에 후식까지 챙겨주고 나를 먼저 재우고는 설거지를 마치고 늦게 잠에 들었다.


나는 아내의 잠든 얼굴을 참 좋아하는데, 아내는 내가 자기 자는 모습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나는 아내 말을 잘 듣는 남편이니까 오늘은 자는 아내 얼굴을 동영상으로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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