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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24. 2022

무더운 여름으로 돌아간 뚜벅이

하루에 두개의 일을 해도 즐겁다는 택시기사의 상기된 얼굴이 부러웠다. Paul 제공

짐을 모두 챙겨 집으로 나오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한 국회의원 비서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단독 기사를 취재중이었는데 상황 공유차 연락한 것이었다. 다행히 공항버스가 오기 전 통화를 끝냈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한숨도 못자고 도착한 방콕공항에서 그랩보다 저렴한 로컬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으름장이 많았다. 곳곳을 다녀봤지만 오랜만에 방문하는 동남아 지역이라 걱정이 꽤나 앞섰다. 짐을 찾은 뒤 택시 앱을 켰는데 다행히 곧바로 기사가 배정됐다.


거센 비가 내리는 새벽에 오로지 나를 위해 숙소로 향해줄 그가 퍽 반가웠다. 차가 출발한 직후 이 일이 몇년째냐 물었다. 본인은 호텔리어라면서 퇴근하고 저녁 10시부터 새벽까지 운전을 한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42살이라며 16살 청소년이었을 때보다 힘이 넘친단다. 그러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즐겁다고 했고 젊으니 돈을 많이 벌도록 열심히 일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출국 직전까지 연차인 내게 끊임없이 날라오는 업무 연락을 애써 회피했는데 무언가 반성을 곱씹게 됐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날이 밝아 있었다. 평소에 챙기지 않는 아침을 여행지에선 꼭 먹게 된다. 사실은 숙박료에 포함된 탓이다. 어쨌든 밥을 먹은 뒤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내 숙소가 있던 지역은 방콕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금융권 회사들이 즐비했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던 직장인들은 그들을 위해 아침만 열리는 시장에서 잇따라 점심을 구매했다. 한국인의 시각에 당시 팔던 음식들은 위생이 첨가되지 못한 것들이 전부였다. 문화적 차이로부터 발생한 괴리감이었는데 시장 상인들과 직장인들, 두 집단의 바쁜 아침을 엿볼 수 있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는 식당에서 로컬들과 팟타이를 욱여 넣으니 뿌듯했다. Paul 제공

날이 더워서 그런지 입맛이 썩 돌진 않았다. 그래도 타지에 나왔는데 제때 끼니를 먹어야하지 않겠나 싶었다. 태국에 왔으니 팟타이를 먹고 싶었는데 호텔 직원들은 무슨 영문에서인지 주변의 로컬 팟타이 가게를 모르는 듯 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판대에서 음식을 사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바다. 어쨌든 정보를 얻지 못한 나는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식당은 현지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없었다. 태국어만 가득한 메뉴판에서 사진으로 팟타이를 찾아 주문했고 맛은 좋았다. 성공한 도전이 됐다.


이튿날 점심은 저렴하기로 유명한 아속역 쇼핑몰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팟크라파오무쌉이 먹고 싶었고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서 줄을 서 있었다. 음식을 담을 쟁반이 부족하자 내 앞에 있던 외국인이 쟁반을 잔뜩 챙겨왔다. 고맙다는 말에 그는 “No worries“라고 답했는데 호주 사람인 걸 직감했다. 정말로 시드니 출신이었고 일행이 없던 우리 둘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남자 두명의 수다가 시작됐고 약 한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그는 고졸 출신의 7년차 행원이었단다. 나도 어학 연수를 하며 사용한 좋은 은행을 왜 그만뒀냐고 묻자 아버지의 말이 영감을 줬다고 했다. 어느날 아버지는 그에게 인생이 짧다고 하셨다고 했다. 대뜸 들은 그 말에 무릎을 탁 쳤고 짧은 인생 도전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녀보자 싶은 결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 결과 방콕을 헤드오피스로 두고 아시아 지역의 호텔들을 관리하는 직군에 몸담고 있단다. 급여가 고작 3만 바트라며 웃어보이던 그는 “그래도 난 행복해“라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그런데도 아쉬운 만남이었다.


시장 한 곳을 빼면 관광지를 가지 않았다. 최대한 한국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멋드러진 사원 앞에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만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왠지 골목길들을 다녀보고 싶었다. 역시나 뜨거운 날씨에 한 가판대에서 3800원짜리 싸구려 선글라스를 구매하기도 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역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줄지어 서 수십분 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땀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습함이 이어졌지만 발이 아주 아파 더이상 걷지 못할 정도가 돼 숙소로 돌아오는 하루하루가 나쁘진 않았다. 떠나온 건데 또 다시 같은 장면들을 마주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싶어 내린 행동의 결과들이었다.


태국의 교통체증은 살인적이었는데 한국 출퇴근 길은 양반이었다. Paul 제공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역으로 가기 위해 지상철 결제를 하는데 주머니 속 동전들이 딱 맞아떨어졌다. 이는 두번째였는데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정신 없이 돈을 썼음에도 이같은 일이 계속 반복됐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게 숙소 근처 카페에 도착해 커피 한잔 홀짝거리며 아이패드 미니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중이다. 한국 가서 풀어놓으면 되지만 현장감을 살리고 싶은 못된 고질병 덕분이다. 다행히 카페가 마감하기 전 여유롭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들어 첫 연차를 쓴 건데 그마저도 주말을 붙여 고작 3일을 결재했다. 다음주부터 또 일정이 가득찼고 10월은 길게 쉴 수 있는 날이 전무해 굳이 6시간 거리를 날라왔다. 애초 무언가 하려 하지 않았고 출국 몇시간 전인 지금까지 정확히 별 것 하지 않았다. 어느 택시기사가 내게 왜 혼자 왔냐며 한국 사람을 좋아할 로컬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란 우스갯소릴 던지기도 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면 얻는 즐거움들이 있었겠지만 글쎄다. 아무 생각 않고 시간을 소비할 수 있었던 지난 5일이 지금은 꼭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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