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을 했던 경제지는 흔히 언론사하면 떠오르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편집국은 명상을 해도 될 만큼 조용하고, 사실 뉴스가 TV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니 엄밀히 말하면 고요하다고 할 수 없지만, 기자들끼리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데스크는 세상 가장 무거운 표정으로 연합 속보와 PV를 관리한다. 아마 국내 언론사 중에서 이같은 모습을 하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이 종합지는 달랐다. 물론 기자는 회사를 아주 가끔씩 출근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면 재택을 할 때였지만 그래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선배들이 보이지 않았다. 데스크는 대개 11시 회의 10분 전에 출근했다. 효율을 따져보면 사실 이게 맞는거다. 이유는 간단한데, 회의는 아주 길어야 10분이기 때문. 그마저도 '별 일 없지'로 대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분초를 다투는 직업이라기엔 상대적으로 느긋해보이는 선배들과 데스크들이 매우 진심인 시간이 있다. 점심시간이다. 보통 기업의 경우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약 1시간 30분 가량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내가 있던 곳도 뭐 명목상으론 11시 30분부터 시작이긴 했다. 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좋은 시간이 지루해질 때'였다. 회사가 서울 중심 한 가운데 있었기에 다채로운 종류의 음식이 우릴 기다렸다. 나도 나름 젊은이에 속해 무수히 많은 맛집을 다녔지만 내가 알고 있던 건 그냥 약과에 불과했다. 수십년간의 미팅과 취재로 다져진 데스크들의 숨은 맛집 탐방은 입사 후 5kg를 찌우기에 충분했다. 음식점 선정 기준은 딱 한 가지였는데, 절대로 회사 근처에서 먹지 않을 것. 최소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게 이 종합지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이에 난 점심을 먹으러 청계천을 졸졸 걸어보기도 하고, 지하철과 버스도 타고, 택시를 타고 짧은 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당연히 이렇게 찾아간 곳들은 글을 쓰고 있는 이 무더운 여름에도 입맛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줄 만큼 내공을 보여줬다. 이러니 1시간 30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점심을 다먹고 날이 좋으면 그냥 무작정 걸었다. 광화문 구석구석 숨은 산책길이 어찌나 많던지. 취재로 생각이 많을 때면 그걸 또 어떻게 알아 등산에 오르기도 했다. 하염없이 걷다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정자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기자들이 으레 털어놓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럼 또 배가 고파지고, 데스크들은 '에잇, 오늘 판 접자'라는 말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직장생활의 꽃은 회식이라고 했던가, 내가 몸담았던 이 회사는 회식이라는 개념보다 그저 선배와 후배가 어제 했던 이야기를 오늘 또다시 꺼내놓을 수 있는 소소함을 즐기는 곳이었다.
일은 언제 하냐고? 아마 언젠가 포털에서 혹은 TV 뉴스를 통해, 아니면 직장인 친구에게 한번쯤 '재택하니 일이 더 잘 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우리 회사도 그랬다. 꼭 재택 때문이 아니라 이같은 자율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니 기자들의 책임감 역시 높았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회사에 출근했던 날이 까막득해 선후배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할 만큼 연락이 뜸해진, 이러한 상황에서 선배들은 잇따른 단독 기사를 쏘고 주요 이슈를 놓치지 않았다. 나도 선배들의 뒤를 쫓아 반이라도 해보자 싶은 마음이었고 누린 자유 만큼 성실하게 취재했다. 그결과, 하루에 100만 PV만 넘기자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다. 이는 본지와 합한 PV가 아니었다. 오히려 본지보다 PV가 더 높은 날도 있었다. 자율에 따른 책임감, 이 말을 정확하게 실감하던 곳이었다.
내가 타 매체로 옮겨가는 것이 확정된 날, 선배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그동안 고생했어' '거기서도 잘 할거야' 등 으레적인 말도 있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분명 좋은 기자가 될 거야' '너무 서운하지만 꼭 다시 만나자' '지금 껏 잘해왔으니 앞으로 응원할게' '언제든 연락해 밥 사줄게' 등 평범한 말이지만 한동안 붙잡고 있으면 먹먹해지는 진심을 가득 전달해주셨다. 우리 데스크는 '장가를 보내는 기분'이라고 하셨으니 떠났지만 언젠가 돌아갈 고향 같은 느낌적 느낌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갈지 아닐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내게 보여주신 선배들의 모습을 잘 배워 앞으로 만날 후배들에게 이같은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다. 이 각박한 세상 가운데 '아낌없이 베푼다, 후배니까'를 널리널리 공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