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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19. 2022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는 아쉬움

내게 학부 과제는 일을 하기 위해 빨리 끝내버려야 하는 '필요없는 낭만'에 속했었다. Paul 제공

오늘 오전 8시쯤 눈을 떴다. 최근 날씨가 추워진 탓에 길이 얼어 어머니를 학교까지 태워다 드리기 위해서였다. 짧고 굵은 드라이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대학원에 갈 준비를 하는 동생의 사부작거림에 일어난 때가 점심이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아파트 헬스장으로 가 운동을 했다. 런닝머신을 뛰는데 나와 같이 달리는 사람들은 전부 할아버지거나 할머니였다. 그렇게 멍하니 40여 분쯤을 뛰고 여러 운동기구들을 명목상 들었다 놨다 했다.


이후 행선지는 집 근처 대형마트였다. 온라인 주문을 하겠다던 어머니에게 그냥 내가 가겠다고 했다. 아직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라 겸사겸사 마실을 다녀오고 싶었다.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마트 내 스타벅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꽤 빠르게 커피가 손안에 들어왔다. 한모금 들이키는데 휴무임에도 업무 스트레스가 날아가 비로소 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영락 없는 직장인이어서인가. 어쨌든 그렇게 커피를 홀짝거리며 바나나, 깻잎, 우유, 비닐봉지 등을 카트에 담아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데자뷰인 것 마냥 다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딱히 볼 것이 없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했던 게 바로 영화 '동감'이었다. 지난 2000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각종 구구절절한 서사는 뒤로하고 눈길을 끌었던 점이 바로 대학생활이었다. 주인공들은 동아리 가입을 위해 탐방도 하고 그렇게 들어간 동아리에서 회의도 하고. 과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거나 친구들과 깊은 밤 둘러 앉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를 한참 보는데 별안간 "난 대학생 때 왜 저렇게 안 살았지"란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그러니까"라며 맞장구를 치셨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학부 시절 어머니 눈에는 아들이 대학생활을 즐기기보다 일만 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이 당신에겐 안타까워 보였다며 "어차피 나중에 직장 가면 할 일인데 왜 저렇게 할까 싶었다"고 하셨다. 난 이 말을 들은 뒤 "덕분에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었지"라고 했고 어머니는 "선택의 결과였지"라고 덧붙이셨다.


지난 글에서 여러번 언급한 바 있다. 문예창작과로 전과를 하고 난 후 막연한 진로를 구체화하기 위해 참 바쁘게 살았다. 강의실에선 항상 노트북이 책상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든 원하는 분야에서 발을 빼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다. 4-2 진도준이 아닌 지극히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전진하려면 영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뛰어봤자 저들에 비하면 한계가 정해진 발악이었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꿀리게 살고 싶지는 않았던 마음이 컸다.


당시의 선택과 집중이 결과적으로 빛을 발했다. 웬만큼 돈을 벌면서도 시간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용 가능한 직무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 희열을 종종 느끼니 내게 잘 맞는 업을 택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지난주에도 타 매체가 취재하지 못한 사실관계를 관계자로부터 따 보도한 바 있는데 이럴 때면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아주 가끔이라도 이같은 기분이 들 때 그 일을 지속해서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는데 경험자로서 이 말은 전적으로 맞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 콘텐츠나 순간을 마주할 때 항상 "난 왜 저때 안그랬지"란 말이 나온다. 지난주 종영한 SBS 드라마 '치얼업'을 보는 내내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은 공평하기에 모든 걸 얻지 못한다. 반드시 선취해야 할 때가 온다는 말이다. 만약 전과를 막 끝낸 대학교 2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성격상 끝내주게 놀면서 새벽을 맞으며 미래를 위해 정진할 위인이 되지 못한다. 둘 다 어중간했을 것이다.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거란 말이다.


같은 말을 계속 내뱉는 건 갖지 못한 경험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데 아쉬워하면 뭐하겠나. 그래도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어 정말 다행이다 마음을 종종 쓸어내린다. 밤새 부어라 마셔라 놀아보지도 못했는데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내가 선택한 대학생활이었고 그 결과물을 받아들어 현재를 살고 있으니 아쉬움도, 어쩌면 있을 후회도 모두 내 몫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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