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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29. 2023

괜찮게 잘 살아가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하루를 보냈다는 건 참 괜찮은 거다. Paul 제공

일을 하고 있던 어느 오후에 휴대전화로 문자 한통이 들어왔다. 지난해 모교 특강을 들었던 후배였다. 진로와 관련해 고민이 있다면서 시간이 난다면 통화를 해줄 수 있겠냐고 했다. 이 부탁이 뭐 별거라고 너무 정중하게 물어봐 재빨리 '가능한 시간에 전화를 달라'고 회신했다. 그러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문자를 보냈던 후배였다.


고민의 요점은 이랬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 언론사에 기자가 아닌 일반 직군 정규직으로 합격했단다. 뉴스를 편집하는 직무였는데 이 일이 훗날 기자로 일하며 도움이 될지 여부를 몰라 내게 물어보려 했다는 것이었다. 후배의 나이가 취업을 서둘러야 할 때라 먼저 언론고시를 언제까지 준비할거냐 물었다. 그랬더니 한 지역 방송국에 서류 합격해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왜 이제야 말해줬냐고 했다. 합격의 보장이 현저하게 낮은 언론고시를 준비하라고 마냥 독려할 수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미 1차 합격한 곳이 있다니 당연히 남은 시험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제대로 준비해도 모르는 게 언론고시니 당장 눈앞에 있는, 원래 바라던 꿈을 이루는데 집중하라고 일러줬다. 정규직으로 합격한 인터넷 언론사가 어떤 곳인지도 덧붙여서 말이다.


사실 후배와 통화를 하며 엄청난 조언을 해준 건 아니다. 우선순위가 너무도 분명했기에 내가 아닌 어느 누가 했더라도 똑같은 답을 해줬을 것이다. 그런 내게 후배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깊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를 단번에 해결했다는 말도 함께. 진짜 이 후배가 나로 인해 답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후배가 원했던 건 동일한 꿈을 꿨던 선험자의 공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모교 저널리즘전공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후배가 고민하며 찾아왔길래 내게 연락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었다. 해준 건 없지만 이야기를 나눠봤다고 회신을 드렸다. 그랬더니 학생의 연락을 받아줘 감사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내게 강단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분이기에 내 감사가 더 큰데 말이다.


언젠가 진로 상담을 위해 고등학생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다른 더 뛰어난 기자가 있다'는 말을 건넨 바 있다. 그러자 학생들은 메일을 보내 회신이 온 건 나 뿐이었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복수의 선배들에게 당시 상황을 전하니 '기자가 너무 쉽게 그런 일 응해주는 것 아니다'고 하셨다. 순간 내 직업은 더 좋은 기사를 위해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는 것인데란 생각이 스쳤다. 모든 선배가 동일한 생각을 갖는 건 아니겠지만 참 기이했던 기억이다.


삶을 잘 살고 있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이따금씩 되짚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다채로움이 많으면 그런 걸까. 상대성을 갖고 있으니 이것도 틀리진 않다. 세워둔 가치가 다르니 이를 정의하는 것 역시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사는가. 분명한 건 직장을 얻으면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던 대학생의 생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는 점이다.


그래도 썩 나쁘진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나눌거란 목표를 어떤 형태로든 실천하고 있기에 그렇다. 어쨌든 무언가라도 쥐고 있어야 가능하고 이에 받은 복을 세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겪어보니 나누면 되받지 못한 경우보다 갑절의 큰 감사를 얻을 때가 훨씬 많다. 레모나를 건넸는데 아주 맛좋은 케이크 여러 조각을 받은 오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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