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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01. 2023

운명 공동체를 꾸린다면

호주 어느 시골에 있는 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Paul 제공

요즘 주변 지인들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거나 그 현장을 방문할 때면 이전과 달라진 마음가짐이 내 안에 가득하다는 걸 깨닫곤 한다. 이번 주말에도 같이 허허거리며 놀았던 사촌형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동일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싶고 이제는 나도 별 수 없이 풀어내야 하는 하나의 문제로 자리한 것이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친구가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 친구도 결혼하면 어느새 소원해진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안식처이지만 그건 당신의 부모가 결혼이란 제도적 관습을 받아들였기에 형성된거다. 어쨌든 난 독신이 내 은사는 아니라고 강하게 믿어보려고 한다.


이런 내 의지가 들켰는지 부쩍 '이런 사람 있는데 만나 볼래'란 어머니의 권유가 늘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가 잇따라 들어오기도 했다. 직업군은 갓 행정고시를 합격한 공무원을 비롯해 약사, 교사, 변호사 등이었다. 실제 깊은 만남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기준을 삼고 사람을 만나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개하기 전 무엇을 하는지에 먼저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적응을 하지 못했기도 했다.


누구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걸까. 부모와 지인들이 내게 종종 "배우자 기도를 하면 그대로 이뤄진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의심이 들었다는 건 둘째고 적령기에 도달하지 않았었기에 대수롭지않게 넘긴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사회적 기업 대표와 만나 미팅을 하던 중 "저도 배우자 기도대로 남편을 만났다"는 회고를 전해 듣고 그날밤부터 배우자 기도에 돌입했다. 역시 직접 마음을 먹어야 구체적으로 행동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매일 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배우자 기도가 그대로 된다고 하지만 사실 좀 남사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다. 마치 세상에 없는 인조인간 출고를 주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바라는 여러 모습의 사람이 실제한다면 도대체 날 왜 만나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기도 마지막엔 항상 이런 맺음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나 역시 지금보다 더 괜찮은 자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나눌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손에 쥐고 있는게 많든 적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다. 이같은 성품을 갖고 국내든 해외든 함께 쏘다닐 수 있으면 된다는 전제도 덧붙였다. 한평생 살아가야 하는데 가치관이 맞아야 걷는 발걸음은 물론이고 짝하는 박수 소리도 경쾌하게 날테니.


현실적 모델도 내겐 존재하고 있다. 결혼한지 30여년이 지났으나 현재까지도 서로 사랑한다 말을 아끼지 않는 부부다. 또 상대를 여전히 존경한다고 강조하며 거리를 거닐 때면 손을 꽉잡고 걷는다. 흔히 결혼 후 십수년이 지나면 자식 보고 산다고 하는데 이들에겐 결혼식 당시 나눴던 선언서가 유효한듯 보였다. 이들은 다름 아닌 내 삶 저변에 다채로운 영향력을 끼쳤던 아버지와 어머니다. 절반이라도 뒤쫓음이 가능하다면 훗날 성공적인 결혼생활이었다 자신있게 풀어낼 수도 있겠다 자신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잘맞음을 알아내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맞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잘 준비돼야 하고 진가를 나타내면 된다는 거다. 분명 알아볼 이가 있을테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도록 여러 성숙함을 갖춰두면 된다. 언젠가 그 누군가와 이 글을 같이 읽게 될 날이 온다면 적어도 우리가 속한 곳에 다채로운 영향력을 나타내는 선한 공동체가 돼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새삼 죽이 잘 맞다는 표현은 실현이 쉽지 않구나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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