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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04. 2023

북적거릴 수 있다는 즐거움

최초로 주문한 음료가 이만큼이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Paul 제공

지난 주말, 오전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경주로 향했다. 사촌의 결혼식을 위해서였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어렸을 때 결혼한 사촌을 위해 축가를 부른 바 있다. 그리곤 몇번의 결혼식이 이어졌지만 별다르게 무대를 꾸미진 않았다. 저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정들이 생겼고 다 모일 수 있는 여건도 형성되지 못한 탓이었다. 이번 결혼식은 때마침 시간을 낼 수 있는 자들이 많았고 부랴부랴 축가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결혼식 당일 축가 준비를 위해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장소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식장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한 적은 있어도 노래를 한 적은 없었는데 가만히 있던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그래도 서른을 넘기며 생긴 이상한 배포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 번 스치고 마는 하객들인데 신랑 신부 마음에만 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싶었다.


참 우여곡절이 많은 결혼식 참석이었다. 일을 마치고 곧바로 넘어가 정신이 없었다. 그 결과 신발장 앞에 꺼내둔 구두와 넥타이를 챙기지 못했다. 이는 경주에 하루 전 도착해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들어가려던 찰나 기억하게 됐다. 다행히 신발은 스니커즈를 신어 팔자에도 없는 패셔니스타 행세를 하면 됐지만 문제는 넥타이였다. 물론 빌리면 되지만 그냥 내것을 하고 싶었다. 경주 시내 넥타이가 있을 만한 마트와 옷가게 등을 다 뒤졌고 결국 넥타이를 손에 넣었다는 결말을 알린다.


축가는 아무런 사고 없이 마쳤다. 이후 점심을 먹고 바로 파하면 됐는데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그동안 외가 식구는 종종 모이곤 했는데 사촌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하며 한데 모이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결혼식 등 행사가 있어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이 근래 들어 가장 많이 모인 것이었다. 사실 결혼식 전날 한 리조트에 모이긴 했는데 다음날을 위해 빨리 잠에 들었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2차가 필요하긴 했다.


카페는 조용했다가 갑자기 시끌벅적 분위기가 요란해졌다. 우리가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모와 이모부를 비롯해 사촌들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이전과는 다른 규모의 가족이 모이니 새삼 실감이 났단 말이다. 이 그룹에서 중간쯤 되는 나이였던 나는 주문자로 지목당했고 처음 입직해 막내였을 때처럼 이리저리 음료 주문을 받으러 다녔다. 당연히 완성된 커피를 분배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밑에 막내들이 줄줄이 있었는데 참.


윗어른들이야 늘상 대화의 주제가 엇비슷했지만 나와 사촌들의 이야기는 이전과 달랐다. 취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등 연륜이 한껏 묻어난 이슈들이 오갔다. 다음 차례가 누구냐는 질문엔 서로 미루기 바빴다. 이 질문은 1박 2일 동안 친척들을 포함해 만나는 사람마다 잇따라 들었는데 매스컴에서 왜 그렇게 '내려가기 두렵다'를 발제로 다뤘는지 알 것 같았다. 당장 계획도 없고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 무슨 수로 구체화를 시킨단 말인가.


시간은 흘러 KTX를 타고 내려온 가정이 역으로 출발해야 할 때 모임을 끝냈다. 주말이라 차도 막히니 빨리 이동해야 하는데 아쉬움이란 같은 마음이 모두에게 있어 쉽사리 자리를 뜨는 이는 없었다. 이에 함께 찍은 사진을 톡으로 냐누며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맨 끝에 나눈 '다음에 봐'란 대화가 이렇게 아련한 말이었나 싶기도 했다. 언제 크나 했는데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야 할 만큼 삶의 속도가 빠르단 걸 자각한다. 북적거리는 가족이 있는 건 아마도 가장 큰 축복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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