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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11. 2023

요청만 하던 인터뷰를 당해봤다

인터뷰 요청을 받는 게 이런 떨림이 있었나 새삼 느끼게 됐다. Paul 제공

2주 전 지방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들어왔다. 보통 밤 늦게 문자를 보내는 건 보도자료를 송부하기 위한 노조들이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예측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휴대전화를 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아주 장문의 내용이었다. 특집 기사 인터뷰 요청을 위해 학보사 후배가 보낸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가 딱 맞는 표현이었다.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총장상을 받지도 못한 그저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학부 시절 누군가 알아주는 삶을 살길 바란 건 아니었다. 다만 적어도 원하는 분야에서 노력이 헛되지 않게 끊임없이 사부작거렸다. 지난해 감사한 첫 기회를 시작으로 올해도 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학교 특강이 잇따라 들어온 것에 감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영구히 박제 가능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기성 매체 신문도 잘 보지 않는 세상에서 대학신문 수요는 이미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끽해야 학보사에 몸담았던 구성원들과 일부 교수들이 다일 것이다. 이에 실명과 얼굴이 나오는 인터뷰를 굳이 응하는 데에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졸업생으로 갈음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도록 두라는 조언도 받았다.


인턴기자 시절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전문가와의 멘트를 따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매체 이름을 말하면 내가 묻지 않은 것까지 친절하게 답변해주지만 당시엔 별 볼일 없는 인턴에게 시간을 내어줄 이는 없었다. 심지어 모교 교수들도 동일한 태도를 보여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학보사 후배도 6문단이나 되는 문자를 내게 보내며 비슷한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후배가 꿈을 위해 과정을 쌓아가며 낸 용기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뭐 내가 대단한 인터뷰이도 아닌데 찾아준 것도 고마웠고.


2주 뒤 학보사 건물을 찾아 인터뷰에 응하며 내내 어색함이 가시지 않았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뀌니 대답을 어떻게 하면 조리있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기사를 어떻게 쓸건지는 온전히 기자에게 달렸는데 신문이 나오기까지 기다림이 꽤나 쫄릴 것 같았다. 순간 그동안 일했던 방식을 돌아보게 됐고 약간의 반성을 하기도 했다. 항상 반대 입장이 돼봐야 정신을 차리는 거다. 안 친절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더 여유롭게 취재원을 쪼으리라 다짐했다.


어떤 답변을 했는지 여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문을 본 딱 한명의 후배라도 자신의 꿈을 이뤄갈 용기를 얻는다면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원하는 분야의 입직을 위해 저마다 방법을 열심히 적용해 가고 있을 텐데 내 걸음이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단 걸 알아차리면 그걸로 됐단 뜻이다. 나도 이번 시간을 통해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얻었다. 여러 이유로 누군가 나를 찾는다는 건 정말 큰 감사인데 무언가라도 기꺼이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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