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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14. 2023

거자필반을 위해 찾아온 타이밍

진심어린 응원이 담긴 선배의 카톡을 잊지 않기 위해 캡처로 남겨뒀다. Paul 제공

무탈한가. 별안간 휴대전화가 울린 뒤 받은 선배의 문자였다. 지난 명절에 연락을 드리지 못한 데 따른 불호령인가 싶어 뜨끔하기도 했다. 시간 맞춰 밥 한번 얻어먹으러 가겠다고 답을 보내니 선배는 '언제든 된다'며 즉답을 주셨다. 안부를 묻는 건 후배의 몫이기에 보통 이런 경우 목적이 없지 않다. 이를 잠자코 생각하고 있던 순간 선배의 문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요지는 이리로 넘어오라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 연락을 받던 당시엔 카페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녁에 뭘 먹어야 할까쯤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인지했던 것 같다. 쩔쩔매며 출입처에 전화를 걸던 햇병아리 시절 갖은 실수를 해도 충분히 나를 믿어줬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기회없는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데 선배의 기회까지 쥐어주며 함께 나아감을 도모한 곳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다시 닿는다면 은퇴는 이곳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 바 있다.


이어진 선배의 연락은 내게 추억이 담긴 여러 감사를 곱씹을 수 있도록 도왔다. 경력이 족히 30년은 훌쩍 넘은 선배는 '너같은 실력자는 별로 없다고 본다'며 스테이도 도전도 모두 나에게 달렸다고 강조하셨다. 문득 떠나던 날 선배가 팀 단톡에 남겨주셨던 '회자정리요 거자필반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완곡했던 제안과 이력서를 다시 만지작거릴 결심과는 별개로 후배를 잊지 않아준 그의 마음에 큰 감사가 다가왔다.


내가 유명 정치인을 크게 조졌다거나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건을 단독 보도해 기자협회상을 받거나 하진 않았다. 모름지기 영향력있는 기자의 조건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 역시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쥐뿔도 없는 나에게 이런 제안은 종종 온다. 다른 매체의 한 선배는 기간을 두고 3번이나 연락을 주기도 했다. 인턴으로 업계에 발을 처음 디디며 요행을 바라지 말고 성실하게만 일하자는 다짐을 했었는데 이게 화려한 상보다 강한 무기가 됐나 싶었다.


어떤 분야나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찾아주는 건 신기한 일이다. 최고가 된다고 해 이른바 콜링이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취하게 될 이점 등이 고려된 결과인데 어쨌든 부족함이 많은 내게 선택의 기회가 잇따라 주어지는 건 복이 분명하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어딘가에 정착해 근속 휴가를 받을 날이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이번 사례를 정리하며 그동안 쓴 기사들을 살펴봤다. 그래도 나름 꿈틀거리며 펜대를 이리저리 굴리려고 했던 티는 나는 것 같아 작은 뿌듯함이 들었다. 학부시절 글을 쓰는 업을 갖는다면 꼭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정말로 내 이름 석자와 회사 이메일이 들어간 바이라인을 사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새삼 어디를 가든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꼬질꼬질한 노트북에 애정이 솟구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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