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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25. 2023

갑작스럽게 며칠 살아보려고

신호등은 나라마다 다른데 일본 것을 디자인한 자를 우리 회사 디자이너로 부르고 싶었다. Paul 제공

갑작스럽게 계획된 쉼이았다. 일주일 전 일을 하며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바 있다. 직장인이 너무 유난떠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으나 정말 힘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선배들 역시 전적으로 공감하는 문제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운이 좋게 이번주 연달아 휴무가 발생하는 걸 보고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가장 저렴란 순으로 말이다.


그렇게 일본이 목적지가 됐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고 하는데 일본 출국 시 PCR 검사를 없애는 건 왜 정상회담 때 의제로 올리지 않았는지. 평소 같았으면 코 한 번 찌르는데 6만 5000원을 절대 지불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떠나리란 굳은 마음은 그깟 기회비용에 개의치 말라 신호를 줬다. 얼마 전 받은 상금으로 비행기와 숙소 값을 충당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행의 큰 몫을 해줬다.


이후 지난 목요일 오전 9시쯤 인천을 출발해 10시쯤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아날로그를 심하게 좋아하는 일본은 입국 수속을 자율에 맡기지 않고 줄을 세워 입장시켰다. 금방 끝나지 않을까란 생각은 한국을 생각한 나의 잘못된 꿈이었다. 입국 도장을 받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2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짐을 찾으러 내려가니 우리 비행기에서 나온 짐들을 항공사 직원이 한데 모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장면은 참 장관이었다.

시장에서 팔고 있던 스시가 왠지 더 맛있어 보였다. Paul 제공

이럴 수 있나 싶었는데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차라리 내릴 거면 시원하게 계속 내리든가, 드문드문 오락가락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습도는 한여름처럼 미친듯이 올라 불쾌지수가 꽤 높았다. 딱히 계획을 세우고 온 건 아니었는데 무언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과연 3일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인 내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해도 열에 아홉은 일본어만 가능했던 상황에선 더더욱 말이다.


무엇보다 한적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구글맵스에 카페를 검색하면 브런치를 먹는 일본스러운 인테리어의 레스토랑들이 등장했다. 바빠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의 남은 부분을 읽겠다며 아이패드를 들고 왔었는데. 고백하자면 이틀째인 어제까지 아이패드는 캐리어 속에 있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스타벅스가 최고의 신식 카페였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공유 플랫폼이 많았다. Paul 제공

이쯤 되면 망한 여행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데 식사가 나를 살렸다. 언제부턴가 해외에 나가면 블로그나 유튜브에 소개된 맛집을 찾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 멀리 나왔는데 식당에서 굳이 정모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지인들이 방문하는 식당을 취재해 방문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곳들만 찾아 다녔다. 어제까지 대성공이었다. 점원들은 영어를 못했고 휴대전화 데이터를 모두 소진해 메뉴를 번역하지 못하고 대충 감으로 시켜야 했기에 그렇다.


살던 곳을 벗어난 건 색다름을 찾고자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렇다면 이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난 식당을 찾는 것처럼 스케줄을 여행객처럼 짜려하지 않는 버릇을 일부러 들였다. 모든 것을 그냥 발길이 닿는대로 걸으며 마주하는 것이다. 이는 아주 큰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구글맵스를 쳐다보지 않게 된다. 그 나라 갔는데 꼭 먹어보고 봐야 하는 거 봤냐는 말에 공감하지 못해도 실패한 여행이 아니었단 걸 증명해내는 셈이다. 나만의 시간과 방법을 구축한 것이니.

좁디 좁은 포장미치는 일본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듯 했다. Paul 제공

글을 쓰기 두시간 전인 어제 밤 무작정 호텔을 나서봤다. 불금을 보내기 위해 직장인들은 식당과 펍에 줄줄이 모여있었다. 이미 파한 자리가 아쉬워 노래방을 찾는 무리도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주 작은 포장마차를 들어가기 위해 비가 내림에도 끝을 모르는 줄을 섰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모습도 문화의 일부겠구나 싶었다. 어디를 가든 ‘아리가또‘를 정중하게 말하는 점원들의 행동 또한 말이다. 어느새 난 밥을 다먹고 난 후 수저를 오른쪽에 가로로 올려두려 노력했는데 관찰의 잔상인가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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