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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01. 2023

끝내 마감을 시도하고 나서

취재를 하면 대중교통을 탈 때가 많은데 사람이 없는 애매한 시간에 타면 나름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Paul 제공

지난주 일본 여행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회의 때 발제한 기획 취재 계획을 아직 제대로 세워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갑자기 나가야 할 현장들이 많았기에 발제를 여유롭게 톺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애초 회의에 들어갈 때 탄탄한 계획을 마련했다면 좋았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말단 기자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변명을 해본다.


일본을 다녀온 다음 찾아온 이번주 스케줄 역시 빈틈이 없었다. 취재를 가려면 일정과 일정 사이 빈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예를 들어 업무는 14시쯤에 마치는데 17시 이태원 약속 전까지 남은 3시간을 광화문으로 넘어가 취재를 진행하는 일정 추가 삽입 말이다. 이런 시도가 아니면 마감 기한을 차일피일 미뤄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후 운이 좋게 취재를 진행할 수 있긴 했다. 그런데 또 발생한 문제는 야마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쉽게 가려면 이미 출고된 타사 기사들과 비슷하게 작성해야 했다. 뻔한 건 써봤자 데스크에게 킬이 될 텐데 참 답이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관련기관과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성하려는 이슈의 현상쯤은 야마를 구체적으로 잡지 않아도 딸 수 있으니까.


좀처럼 기사가 풀리지 않자 보도국에 있던 한 선배에게 하소연을 한 바 있다. 이날은 휴무에 회사 근처 약속을 끝내고 남은 취재를 위해 회사로 들어간 때였다. 선배는 "야마가 잘 잡히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킬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부담이 크면 좋은 내용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말을 들으니 여태껏 취재한 게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내 욕심이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엎자'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사실 기사를 엎는 건 예사다. 실제로 회의를 주재한 데스크도 2주 전 발제를 했다가 각이 나오지 않자 취재를 접은 바 있다. 이렇게 현명한 처신을 한 뒤 곧 도래할 회의 때 가져갈 발제를 일찍 찾아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한창 머리를 쥐어 뜯고 있을 무렵 '그냥 간단하게 현상 정도 톺아보려고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단히 큰 이슈는 아니지만 정책을 시행한지 한달 정도 됐으니 수혜자 입장에서 갖가지를 짚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잡았지만 실제 마감으로 이어지기까지 쉽진 않았다. 특히 오늘은 20도 안팎의 미치게 포근한 날씨였다. 마감을 하러 찾은 카페엔 "어디로 벚꽃 구경 갈래?" 따위의 말들이 행복하게 오가고 있었다. 이렇게 기사를 쓴다고 해 추가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내일 당직 근무가 예정됐는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이 경우를 말하나 싶었다.


딴 생각 할 바에 빨리 마감이나 하자 생각했고 꼬박 3시간 정도 만에 기사를 털 수 있었다. 물론 데스킹이 남아 있어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선배와 전화통을 붙들고 수정을 거치고 있다. 시의성이 있는 기획은 아니라 평일에 올려도 되는데 봐주겠다는 선배 말씀에 이처럼 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날카로운 여러 지적에 최종 출고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홀가분한 주말 저녁이다. 포기하면 늘어지게 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붙들어 보니 뭐라도 나왔다는 게 감사하다. 기사를 쓰는 게 이제는 익숙해졌음은 분명한데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눈이 번쩍 뜨이곤 한다. 내 글은 지인 몇명이랑 돌려보는 사적인 공간에 올려지는 게 아니구나 하고. 분명 다음주 회의 직전 아직 선정하지 못한 발제에 다시 한숨을 퍽퍽 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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