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독서실을 같이 다니던 3명의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조합이 있지 싶을 만큼 각자 다른 성격과 모습을 가졌는데 여하튼 시험이란 목적으로 뭉쳐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다. 이후 나는 다른 지역으로, 한 친구는 미국으로, 두명은 동네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서로 다른 곳을 가며 4명은 흩어졌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국내대학을 진학한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던 터라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지 못했다.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거나 오가는 길에 마주쳤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30살을 성큼 바라보는 지금 따로 또 같이 3명을 줄줄이 만나게 됐다.
10년이 넘게 시간이 흐른 현재, 우리는 다행히도 각자 원하는 길을 열심히 걸어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선생님부터 공무원, 영업사원 등 한 분야에서 나름의 목표를 세워 전진하고 있는 직장인이라고 하니 어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요즈음 번듯한 정규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대화 주제는 이랬다. 종사하고 있는 분야의 동향과 성과, 직무로부터 오는 고민, 그리고 이제 나아가야 할 결혼이란 큰 산까지. '뭐 먹을래' '요즘 그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더라' 등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꼬꼬마들이 멀리서만 들었던 어른들의 대화를 잠자코 하고 있으니 문득 마음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무언가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 마음은 만남들을 파하고 집으로 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봉합되지 않은 싱숭생숭함이랄까, 간헐적으로 내뱉는 한숨이 만남들의 잔상을 꽤나 무겁게 만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만큼 지났고 세월의 속도는 누구도 이길 수 없구나란 말만 멤돌았다. 딱히 이 상황을 무수히 지나쳐온 하루의 한 조각으로 묻을 수 있는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처음으로 맥북을 열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내려가면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쓰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가만히 나를 지탱하고 있는 의자만 아플 만큼 뒤로 젖히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 진학을 위해, 대학을 가서는 원하지 않는 학과에 학기가 거듭될 수록 걱정이 커졌다. 전과를 했을 땐 이 전공으로 어떤 밥벌이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운이 좋게 인턴을 마쳤지만 그 분야의 정규직 자리를 얻는 건 쉽지 않았다. 또 다시 불안감으로 매일매일을 보낸 끝에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을 잘 보냈구나 후회하지 않을 직장에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앞선 글에서도 숱하게 언급했듯이 막상 도착한 목적지엔 특별한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아직 깨지 못한 퀘스트들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줄지어 정렬되어 있었을 뿐.
친구들에게 이같은 속마음을 슬쩍 내비쳤더니 이들 또한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어느덧 지금 자리에 서 있고 앞으로 해야 할 무수히 많은 일들 가운데 썩 자신은 없다고 말이다. 남들처럼 살아내고 있지만 이게 맞는건지 고민이 들고, 그렇다면 해결책이 떠올라야 하는데 딱히 혜안은 없어 일단 시작한 오늘 하루는 보냈다고. 잠자코 들어보니 위로가 되면서도 답답함이 두배가 된다.
딱 한 번 뿐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이제는 먼지가 쌓이고 있는 '청춘이 설렌다' '가치있구나' '뿌듯한 하루였다' 등을 외칠 수 있는 때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한참 읽다가 잠정 하차한 세인트존스대학교의 커리큘럼을 다시 쫓아야 할 순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