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던 고등교육기관 2개가 있다. 첫번째는 세인트존스대학교(Saint John's University)다. 이 대학교는 별다른 커리큘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정한 100여권의 책을 8학기 동안 읽고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토론하면 과목 혹은 학기를 이수할 수 있다. 고작 책 100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직활동을 할 때 도전을 해본 나는 절대로 쉽지 않은 과정임을 알고 있다. 휴대전화도 절반으로 접히는 세상에서 왜 하필 인문 고전이냐고 묻는다면 당장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 이름은 들어봤을 그 고전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수천년전 철학으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지혜가 지금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두번째는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이다. 대개 대학교는 어느 지역에 멋진 건물을 일제히 지어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캠퍼스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이곳은 건물이 필요하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의 모습들을 직접 경험함으로 지혜를 쌓는다. 세계 일류 대학으로 손꼽히는 하버드대학교보다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니 그 명망은 어렴풋이 짐작해볼만 하다. 미네르바스쿨은 한국의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SAT성적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모든 것을 소개할 수 있는 에세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왜 낙타가 바늘에 들어가기 만큼 힘든걸까. 그만큼 주어진 청춘을 어떻게 채워갈지 혹은 한 번 뿐인 삶 가운데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이들이 적다는 지표를 얻게 된다.
한국은 어떤가. 우린 고등학생 때부터 '설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를 달달 외우며 줄세우기 안에 들어간 대학교에 들어가려 밤낮없이 청소년기를 보낸다.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면 의치한과 간호학, 법학 등 일부 전문학과를 제외하곤 딱 한가지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바로 대기업이다. 최근까지도 청년 실업률은 최고점을 기록하며 취업난은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취업난은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도피처일 뿐이다. 소위 'N수생'이란 별명을 얻어 살아가는 청년들을 보면, 그들의 목표는 대기업, 공기업, 고시 등이다. 암울한 청년의 세대라고 하는데, 이들 치고는 목을 수그리지 않고 출입증을 쭉 뻗어 게이트를 찍고 지나는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나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생물학과에서 문예창작과로 호기롭게 전과하고 나서부터는 끊임없이 취업 걱정을 했다. 아무리 '문송합니다'라고 하지만 경영, 경제, 사회학은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대학 그중에서도 순수학문의 끝이라고 분류되는 문예창작과가 이 험난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 졸업을 유예하며 이 학과 설립의 궁극적 목표인 신춘문예에 매달리는 선후배들을 보며 솔직히 두려웠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며 부지런히 꼼지락거린 덕분에 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눈꼽 만큼은 될까 싶은 기자 월급을 생각하면 '기렉시트'를 꿈꿔보지만 일을 하는 순간순간 마주하는 아주 작은 짜릿함을 곱씹으면 어디가서 또 이런 일을 구할까 생각을 고쳐먹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졸업한 학과를 사회의 직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특히 예술, 체육 등 분야는 더 그렇다.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몇 되지 않는 진로 가운데 해당 학위증과 관련한 밥벌이를 한다면 나름 성공했다 말할 수 있다. 대학을 다니며 만난 한 친구도 워낙 탄탄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졸업 후 당연히 관련 분야로 나갈줄 알았다. 그런데 전공과는 정반대로 금융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연히 자리한 식사에서 일이 어떻냐고 물으니 너무 좋다고 한다.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는 "전공을 밥벌이로 하지 못해 조금 그렇지만 지금 이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좋고 설렌다"는 답을 들었다.
이 친구의 마음은 그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익히 접해왔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을 하고, 팀원과 고객 등 만나는 모든 사람에 작지만 마음을 표하려 애쓰며 진실됨을 전하는 친구였다. 덕분에 인정을 받아 곧 또 한번의 진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 있겠으나 성실하고 또 자랑스럽게 일을 해나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밥을 먹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해외 유수 사례를 쫓으며 한국을 싸잡아 비판해왔던 내 스스로가, 사실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누군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무언가를 따라 이제껏 왔음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얻은 것과는 별개다. 일종의 마음가짐인데 내가 왜 이 직업을 택했는지, 그리고 매일매일 어떤 불만을 토로하며 일해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대학교의 간판은 중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에선 입사지원서 내 대학과 학점을 표기하는 란이 여전히 존재한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예능, 다큐 등에서 목이 터져라 말하지만 입사시 받은 명함을 품속에만 고이 간직하고 있는지 아니면 업무가 아니더라도 주변인에 막 뿌리고 있는지를 보면 썩 유쾌하지 않은 해당 명제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과 통화를 할 때 "어디 다니고 있어?"라는 말이 꼭 포함되는 한국의 풍토상 우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을 지나쳤으니 이제는 고민도, 변화를 시도할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소소한 핀잔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라고 외치는 오늘날, 부질없는 걱정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내려놓고 즐기면 참 편하다. 아니면 직업 덕분에 굴러가는 머릿 속 수많은 '발제'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이같은 '주저리주저리'가 모여 여의도 어느 한 구석에 박혀 제도를 고쳐가는 일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쉽사리 예단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으니 먼 훗날 내 모습도 꼭 날카로운 펜대를 쥐고 있지는 않으리라 추측해본다. 이 시작점이 언제일지 모르나 오늘도 주말에 부지런을 떨어 키보드를 두드려본 나에게 감사를 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