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휴대전화에 누구나 깔려있는 애플리케이션 '네이버'를 접속하면 무얼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심지어 외국에서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에 종이신문은 일반인에게 뿐만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애물단지'가 됐다. 산업 구조에 따른 갖가지 사정들이 있으나 어쨌든 종이신문은 이제 '익숙함' 혹은 '친숙함'이란 단어와 가깝지 않고, 시간날 때 옆에 있으면 한번씩 들여다보는 그런 도구가 됐다. 기자가 있는 우리 집만 보더라도 새벽마다 배달돼 오는 회사 신문이 신발장 한켠에 가득 쌓여있으니 말이다.
AI(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며 산업의 다양한 부문에서 이를 활용한 기술이 적용되는 추세다. 이것은 어느새 언론 산업까지 스며들고 있음을 우리는 종종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종편 방송사 뉴스의 한 꼭지를 AI 앵커가 전달하는 코너 같은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경제지가 AI를 활용한 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증권 상황을 단신(Breaking News) 형태로 전하는 것인데 군더더기 없이 야마(핵심)만 전달해 독자들에겐 더 좋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AI 기자'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나타나지 않아 취재 영역에서는 노트북을 든 휴먼(Human)이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렇다고 AI 기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아니다. 현장에 나가있지만 단독 기사를 제외하면 통신사부터 일간지, 경제지 등은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도 언급했듯이 요즘 네이버 뉴스 구독판을 보면 언론사마다 동일한 기사 배열을 만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바로 조회수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 대응 전문 자회사를 설립한 언론사도 있다. 이런 흐름 속 '자신이 취재한 것을 스스로 논평하고 편집하여 신문·잡지 등에 발표한다'라는 직업정 정의를 가진 기자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처음 인턴기자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부끄럽게도 직업적 정의를 생각하고 언론사에 지원서를 제출한 건 아니다. 현재도 선후배들끼리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말하는 단어인 '기자짓'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취재한 것에 대해 제대로 논평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같은 매너리즘에서 하염없이 헤엄치고 있는 내게 적잖은 뿌듯함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인터뷰다.
이번주 이직을 하고 난 뒤 처음으로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칼 만큼이나 날카로운 펜대를 푹푹 쑤시는 데 익숙한 내가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 직업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유일한 '골방'이다. 날카롭게 무언가를 들춰보기만 하지 않고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도 어느 누가 아닌 내가 열심히 해야 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인터뷰를 할 때 절대로 노트북을 들고 타이핑을 하지 않는다. 녹음기를 켜두고 인터뷰이(interviewee)와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물론 다시 편집국으로 복귀해 수십분에 달하는 녹취를 열심히 풀어야하는 고생이 따르지만, 아무리 취재라도 용기를 내어 내 앞에 나온 이와 눈도 한번 맞추지 않는다면 이 무슨 무례일까 싶어 여전히 지키는 나만의 철칙과도 같다.
이번 기사는 지면 마감 시간이 촉박한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잡힌 터라 부득이하게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다. 인터뷰 목적과 질문 등을 간단히 설명드리고 본격 진행하려고 하는데 인터뷰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런 일도 아닌데 이렇게 유명한 ㅇㅇ신문에서 저를 인터뷰해주시다니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라고 말이다. 되려 고마움을 표할 사람은 나임에도 인터뷰이는 수화기 너머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했다. 하루에도 정말 다양한 일이 발생하는 사회 속 자신을 조명해준 기자가 고맙다는 인터뷰이의 따뜻한 마음이, 그날 잔뜩 뿌리고 간 향수 만큼이나 깊게 잔향이 지속됐다.
문득 연예부에 있을 때가 생각났다. 한 방송국 아나운서를 인터뷰했었는데 이 아나운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 기사 링크를 걸며 지인에게 자랑스러움을 내비쳤었다. 이후 주말이 지나고 지면에도 해당 기사가 나왔을 때 이 아나운서는 역시 SNS에 캡처본을 올린 뒤 최애 연예인과 한 지면에 담겼다는 점을 감격해했다. 기자를 시작한 뒤 누군가에게 내 기사로 이런 고마움을 전달받았던 적이 전무해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게시글을 캡처했었다. 또 그날 일을 하는데 나름의 원동력이 됐던 기억도 선명하다.
몇 년 전 민희경 CJ사회공헌추진단 단장과 인터뷰를 할 때 "나는 현재 직업이 n번째고 앞으로도 바뀔 여지는 충분히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이제 직업이란 건 '평생'을 담고 있지 않다.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기를 마다하지 않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분야도 바꿔버릴 수 있는 게 요즘 트렌드다. 분명한 계획없이 트렌드에 편승하는 건 위험하지만 나도 근래에 직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과연 걷고 있는 길이 잘 가고 있는가, 흘러가는 시간을 돌아봤을 때 어땠나 등 생각들이 때론 펜대를 놓아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주변 사람의 행동과 모습에 '미련'하다 보인다면 '미련'이 남아서다. 그래서 쇼핑몰에는 장바구니라는 아주 좋은 도구가 있지 않은가. 당장 구매하지 못해도 언젠가 곧바로 결제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아주 슬기로운 것. 직장인에게도 자신만의 장바구니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중 적지 않은 우리의 동료들은 사직서를 고이 담아두겠지 싶다. 내가 아직 이를 결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미련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때 좋다. 직업적 정의를 대승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단 마음에 글을 택했고 그걸 최대화할 수 있는 기자를 업으로 삼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판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당장 아니 당분간은 다른 직업군으로 런(Run)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흔히 "10년 동안은 굴러봐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냥 인터뷰 같은 소소한 일화가 모여 전직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미련으로 자리한다면 그러려니 하고 정 아니다 싶을 때까지 꾸역꾸역 가보련다. 선배들도 그랬겠지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