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와 스포츠부 기자들은 알겠지만 꽤 레귤러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가수 혹은 배우들이 앨범과 작품에 들어가 방송, 라디오 등으로 홍보를 하는 시스템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도 매우 흡사하다. 홈에서 경기를 하거나 원정을 떠나거나. 이따금씩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 무대에 참가하지만 이것 역시 정해진 기간 내 이뤄져 어느정도는 예측가능하다.
돌발상황이라고 하면 연예인, 선수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언가를 폭로하거나 사회부에서 다룰법한 사건을 저지를 때다. 이런 일은 비교적 드물게 발생하기에 취재를 하는 종합지 내 문화, 스포츠부나 연예스포츠지는 평화로운 일주일과 당직을 보낸다. 그러면 데스크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제를 열심히 해 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블로거도 아닌 기자인데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냅다 긁은 뒤 제목에 하트를 몇개나 넣어 완성한 글을 기사라고 포털에 전송할 수 없지 않은가.
수많은 보도자료 처리로 매너리즘의 깊이가 깊어질 만큼 깊어졌을 때 타 분야를 작성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 처음엔 기쁘고 좋았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분야인 정치 사회 분야를 작성하게 됐으니 이전에 없던 열의가 마구 솟구쳤다. 현장을 커버하는 선배들이 있으니, 발생되는 이슈를 두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이나 그에 따른 반응 등을 발빠르게 정리하면 됐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케이스들을 기사로 전하는 역할을 하는 내가 물론 기자란 직업을 가졌기에 가능했지만 적잖은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좋다고 여겨지는 것과 이에 따라오는 값이 매겨진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연예부에 있을 땐 당직을 하면 이 판의 일에만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정치 사회를 커버하면서부터는 세상 모든 일이 내 소관이 됐다. 얼마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과 연일 폭탄테러를 감행한 IS로 긴장이 계속 됐다. 이 혼돈의 시기 속 하필 당직이었던 나는, 근무가 끝나기 약 20분전 또다시 터진 폭탄테러에 각종 외신을 섭렵하며 추이를 지켜봐야 했다. 감사하게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제부 선배들이 멋짐을 뿜어내며 손을 이어받아주셨지만 짧게 나마 쫄렸던 마음을 쓸어내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사주 의혹을 두고 여야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을 때 항상 뉴스를 틀어두는데, 부모님 마저도 손사래를 치며 이제 더이상 그 뉴스를 보기 싫다고 하셨다. 하물며 나는 오죽하랴. 하루 웬종일 근무하며 이와 관련한 뉴스를 따라가고 있자니 정말 이골이 났다. 어느 누가 진실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비중을 두고 보도를 해야 하는 쪽을 쉽사리 정하지도 못한다. 이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쓰기만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란 생각을 하루에도 수업이 해보곤 한다.
한번은 언론인을 지망하는 유튜버의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 해당 콘텐츠에 따르면 유튜버는 언론인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관련 학원까지 다니며 턱없이 부족한 공채시험을 잇따라 도전한다. 식사를 하거나 자기 전에는 '저널리즘' 등의 단어가 들어간 영상을 보며 막연한 동경을 보내기도 한다. 꼭 나의 대학생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신문' '저널리즘' '언론' 등 단어가 들어간 과목을 섭렵하며 언젠가 나도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열심히 키워갔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내가 만난 기자 선배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아주 긴 한숨을 내뱉거나 짧은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시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돌아와 구름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스낵을 몇개쯤 드시거나. 또 아니면 일찍 판을 접고 어디선가 풀리지 않거나 혹은 퍽 하고 당해 알코올로 소독을 해주는, MBC 예능프로그램 '아무튼출근'에는 절대로 나가지 못한다랄까. 그럼에도 커버해야 할 현장과 상황이 있으면 눈빛이 바뀌어 노트북이 망가질 정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선배들을 보고 있으면 참 멋있다 싶기도 하다. 나는 언제 저런 연륜을 발휘할까 싶기도 하고.
취업난이 심각해 구직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를 접하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정말 그럴까 하는 소소한 대화만 나누면 좋겠지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전화통을 붙잡고 통계청과 전문가, 기업 인사팀과 입씨름을 해야 하는 이 직업의 숙명이 어쩔 땐 애달프기도 하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알게 모르게 두루 섭렵하고 있으니 오죽하면 퇴직한 선배들이 잇따라 귀농을 할까 싶어진다.
익숙함이 가장 무섭다는데 '세상 별 것 없다'는 선배들과 밥을 먹을 때면 짧은 말 속 험난했던 풍파가 어렴풋이 짐작되곤 한다. 매번 이같은 푸념을 선후배들과 늘어놓지만 우리는 내일 또 신문을 만들고 당직을 해나갈 것이고 출입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게 되겠지. 수요자일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까지 공급자로 살아갈까 결론낼 수 없는 꿈을 오늘밤에도 잔뜩 꿔보려나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