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뜻을 아시나요

by Paul
아이들이 환하게 뛰어놀았던 흔적이 아주 미세하기 남았던 베트남의 한 학교. Paul 제공

지난달 한 여권 유력 대선주자는 "돌봄의 책임을 가족이 아닌 사회의 공동 책임이어야한다"라는 것을 강조하며 5대 돌봄 국가 책임제 공약을 내놨다. 해당 공약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인 지역아동센터와 공부방 등을 재조정한 뒤 통합적으로 온종일 돌봄체계를 구축한다. 또 이용시간을 오후 7시까지로 늘리겠다고 했다. 공약 발표를 받아적으며 띠용하고 의문점이 들었다. 과연 공약을 구상하는 참모진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듣고 이같은 내용을 논의한 것일까.


지난 2018년 12월 국회에서 다음해 예산을 의결할 당시 사회복지부문에서의 금액을 대폭 삭감했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곳에 해당 부문의 예산이 이동하지 않았다. 연말이 지난 뒤 각 지역구에는 다가오는 총선을 위한 득표용 예산을 자신이 끌어왔다는 자랑이 담긴 현수막이 줄지어 걸렸다. 국내 예산안 심사는 절대 현장의 목소리와 필요 정책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해였다.


2018년 대비 2019년 지역아동센터 운영보조금은 약 3~4만원 오르는 데 그친 458만원(19인 이하 기준)이었다. 운영보조금이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돈이다. 이를 가지고 지역아동센터의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당시 최저임금은 한달 근무로 계산했을 때 175만원에 불과했다. 인건비를 제외하면 인상된 운영보조금 절반 가량이 사라지는데 이 중 10%를 반드시 사업비로 책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동 1인당 서비스 단가는 고작 1000원 안팎이었다. 20인 이상일 경우 조금 더 받지만 사실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한명당 1000원의 사업비로 과연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을까.


이같은 사정을 잘 아는 대기업들은 정부보다 꽤 발빠르게 움직였다. 각종 프로그램을 대학생봉사단과 함께 지원했지만 전국의 수많은 지역아동센터를 커버할 수는 없었다. 또 지속성의 문제가 있었다. 한개의 프로그램으로 아동이 교육을 받아 작은 변화를 꾀하려면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학생봉사단부터 단발성의 회전을 보이니 '반짝'이는 유리성에 불과했다. 사업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무리 사회공헌활동이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사회공헌'사업'을 이어가지 못한다. 담당자가 진심이라도 의사결정권자들의 눈총을 이길자 누가 있으랴. 정부는 아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나마 의지를 보여줬던 기업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표면적 지원에 그치니 지역아동센터들의 상황은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19년 아동 한명당 사업비가 평균 1000원이 되지 않는단 소식에 언론들은 앞다퉈 해당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당시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있는 취재를 하지 못했으나 몸담고 있던 대학생봉사단을 통해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의 힘듦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가장 큰 문제는 사회복지사들의 급여였다. 더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갖가지 이유로 지역아동센터에 모인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던 선생님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월급을 반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때문에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가져가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매월 수령은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열정만 있으면 무보수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시작된 풀리지 않는 굴레는 그동안 정치인들이 입으로만 해결하겠다 공언하던 소외계층분야의 칼바람을 더욱 매섭게 할 뿐이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지역아동센터와 통합적 운영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짚어야할 부분은 초등학교에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미 공무원으로서 체계적인 호봉제 아래 규칙적인 월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5대 돌봄 영역 종사자가 안정적 고용, 적정임금 보장 등 합리적 수준의 처우 개선이 이뤄져 돌봄 분야 종사자가 자신의 노동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겠다'라는데 기준과 대상이 모호한, 여느 정치인들이 으레 그랬듯 쏟아낸 휘발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지역아동센터에서는 7시 넘게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정원의 30%만 받을 것을 권고하는 방역정책으로 많은 아동이 외면당하고 있다.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이용하고 있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예산과 정책으로 어제도 오늘도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 잇따라 늘고 있다. 현재도 자긍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지난달 발표한 공약이 어떤 개선점을 갖고 있으며 도대체 현재는 왜 이를 정책에 활용하지 않느냔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 타 도시 정책 광고 홍보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으니 이 많은 비용만 활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함을 삼켜본다.


굳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방송에 나와 줄곧 했던 "현재 정쟁의 장은 꺼지지 않고 대선 후보로서 사회와 국가를 위한 정책은 사라졌다"는 말을 잊을 수 없다. 여야 대선 후보 지지율 상위권을 다투는 정치인들을 보면, 모두 측근의 다양한 이슈에 사로잡혀 정작 대통령이 되어 어떤 비전으로 코로나19 속 혼란한 나라를 이끌어갈지 명쾌함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투표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권리라고 하는데, 갈수록 이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정치판은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 자리를 지키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 혹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우리는 자소서를 쓴다. 대개 첫문항에는 '지원 동기와 성장계획'을 적게 된다. 그곳의 가치와 방향성을 녹여 작성하는 것이 '팁'이라고 하나 다른 사람이 아닌 왜 나여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기회는 잡지 못한다. 계획도 마찬가지다.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주니어부터 시니어까지 줄줄이 나열한 멋드러진 계획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매료시킬 수 없다. 자소서 검토에 이골이 났는데 또다시 이런 내용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겠는가.


이번 대선은 조금 다를까 싶었지만 입시와 입사보다도 공정하지 않는 '공식'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변수가 있는 지역에서 좀 더 높은 인기를 얻게되는 정당이 속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목받을 수 있는 주요 이슈는 정책으로 반영되겠지만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분야의 정책은 뒷전이 되겠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의 작은 실천이 누군가 주목해야 할 이들의 내일을 오늘보다는 감사하게 바꿀 수 있다. 왜 그 자리에 가야하는지 만큼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아주 조금이라도 홀로, 그 똑똑한 참모진들과 머리를 맞대 생각해봐줬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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