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은 무뎌짐의 연속

by Paul
내 자리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보자! 다짐해본다. Paul 제공

직장인들은 항상 옷주머니 한켠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는 직장인들의 웃픈 한탄이다. 그럼에도 상사를 향해 쿨하게 사직서를 던지지 못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매달 아주 정확한 날짜에 날라오는 카드값이 될 것이라 생각해본다. 나 역시 바뀐 것이라곤 미세하게 줄어든 노치 하나 뿐인 아이폰13pro를, 아이폰12 사용자지만 시원하게 긁었으니깐. 이 소소한 행복을 놓치기 싫어 오늘도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꾹 참는 여느 직장인들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미팅까지 줄지어 밀렸다면 차라리 낫다. 시간이 좀 걸리고 야근을 하겠지만 어쨌든 차근차근 해내면 된다. 하지만 직장 내 사람들과 특히 상사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일련의 압박을 줄 때면 카드값이고 뭐고 당장 사표를 써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분명 본인도 주니어 연차를 지나왔을 텐데 소싯적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득한 후배를 향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참 이래서 인간인 건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난 주 평일 당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보통 저녁 시간에는 주요 이슈가 발생하지 않아 이전에 있던 이슈들을 종합하거나 약간 발전시켜 기사로 출고하곤 한다. 속보없는 평온한 저녁이면 딜레마에 빠진다.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발제거리가 없으니 참 난감하다. 이날도 여유롭게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이리저리 이슈를 찾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던 걸 발제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자료를 종합해 기사로 출고 했다. 데스크도 기사를 읽은 뒤 PV가 잘 나오겠다 싶었는지 포털의 회사 채널 메인에 쭉 걸어뒀고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갑론을박을 이어가는 등 반응이 좋았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근무하면서 처음 본 타 부서 선배가 전화를 바꿔줬다. 그 이슈를 다루는 출입처 데스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니 '네가 ㅇㅇㅇ냐'로 말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니까 본인을 아냐고 물었고 내 연차를 물어봤다. 그러더니 내가 무슨 잘못을 한지 아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답했더니 자기 부서에서 나간 기사를 보란다. 전화를 붙들고 기사들을 살펴봤는데 내가 출고했던 기사와 비슷한 기사 한개를 발견했다. 기사 작성 전 해당 이슈 관련 회사에서 출고된 기사를 검색했는데 없다고 생각했고 직접 취재를 해 기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나온 기사를 봤음에도 똑같은 기사를 출고하는 바보가 어디있겠는가. 그리고 기사 내용이 똑같지도 않았다. 분명 다른 점이 존재했고 내가 기사를 작성한 시점에서의 누리꾼들 반응도 첨부했었다.


머쓱해졌는지 그 데스크는 전화를 바꿔준 선배에게 전화를 넘기란다. 전화를 넘기니 선배에게 "내가 술을 한잔 했는데..."라며 일종의 푸념을 시작했다. 그리곤 이 통화를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다며 선배에게 상황 설명을 나보고 잘 하란다. 참으로 황당했다. 뭐 어쨌든 출입처에서 문제를 제기했으니 우리 데스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하고 기사 삭제 여부 등 후속 조치를 여쭈니 "걔네는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전화를 한 거지. 술먹고 전화 한거지?"라고 했다. 이후 약 1시간 가량, 아니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쫌 서글펐다. 한숨을 얼마나 내뱉었는지 정말 땅이 꺼져도 몇번은 꺼졌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존경할 데스크들을 만나왔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후배를 위해 가격을 상관하지 않고, 일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후배를 위해 할 일 제쳐두고 음료를 곁들인 등산을 나서고, 민감한 기사를 쓸 때면 '걱정하지마 내가 다 책임 져'라며 후배를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고, 앞날이 불안하다는 후배를 위해 물심양면 방법을 찾으려 뛰어다니는 데스크. 이런 선배 밑에서 일하며 나도 언젠가 후배가 생기면 꼭 이렇게 해야 겠다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다음 날이 되면 이 일화는 동료 혹인 친구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는 안주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들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걸 들으며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위안 아닌 위안도 얻을 것이다. 이내 "더럽지만 참아보자"라며 서로를 다독이고 털어버리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무언가 모를 씁쓸함을 느낄지도. 그럴 때면 잘 다니던 직장을 미련없이 때려치고 좋아하는 분야의 사업을 시작한 지인들이 새삼 부러워지기도 한다. 돈 문제는 둘째치고 사회적 시선이 아닌 진짜 나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나를 두고 본다면 그들을 향해 아낌없는 지지와 박수를 보내겠다.


아이폰 할부를 12개월로 끊었으니 적어도 12개월은 열심히 출근해야 한다. 그러면서 늘 그래왔듯 '그러려니'라며 무뎌지는 연습을 해본다. 이 기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다면 난 계속 다음 할부를 끊으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을 테니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편익으로 견고해진 '그들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