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우리를 마주한다는 건

by Paul
Screen Shot 2021-10-24 at 9.30.26 PM.png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한적함이 좋아지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가. Paul 제공

지난 23일 결혼식 참석을 위해 창원으로 내려갔다. 이번 주인공은 사촌누나였는데 외가에서는 5번째다. 4번째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꽤 어릴 때 진행됐던 터라 사실 큰 감흥이 없었다. 이번 결혼식도 내가 적령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컸던지 썩 와닿지는 않았지만 나도 이제 마음만 먹으면 이같은 행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 가운데 오래 전 결혼한 누나 혹은 형들은 아이를 데리고 왔었다. 벌써 14살, 11살 등 아주 꼬맹이일 때 만났던 아가들이 빠르게 지나간 시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코로나19 장기화 등 여러 이슈 속에 자주 만나지 못해 명절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 어른들은 너를 알지만 아이들은 그대를 전혀 모르는 머쓱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넉살 좋은 조카들은 더 어색해하는 삼촌, 이모들을 성심껏 놀아줬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촌들은 다수가 직장인이 됐다. PD부터 간호사, 군인, 엔지니어 등 다채로운 직군에서 오래도록 꿈꿨던 일들을 현실화하고 있었다. 이 역시 감개무량했으나 더 미묘한 감정이 들었던 건 우리들의 대화 주제였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명절에 자전거방을 하시는 외할아버지집에 모이면 TV 앞에 옹기종기모여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다 흥미가 떨어지면 또래마다 그룹을 지어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썰(?)을 풀었다. 가령 새로 바뀐 짝궁이 마음에 든다던지, 다니는 학원에서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던지 등이었다. 이것마저도 싫증이 나면 자전거방 옆에 위치했던 문방구에서 폭죽 종류를 여러개 구입해 근처 농협 주차장으로 가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이제는 다들 서른을 넘겼거나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직장, 결혼, 경제 등 어른들이 명절에 꺼냈던 재미없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었다. 서울은 집값이 이렇게 비싼데 지방에는 아직 살만 하다, 구입한 건물에 집 말고 카페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자동차를 다시 사고 싶은데 추천해줄 수 있느냐, 아이 진로가 이런데 조언이 필요하다 등 자연스럽게 해당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무탈하게 이만큼 컸다는 점에서 으쓱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내가 너무 성공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살고 있는건가 싶었다. 결혼한 5명의 사촌들은 모두 지방에 살고 있다. 부족할 것도, 그렇다고 넘칠 것도 없이 평범하면서도 감사하게 가정을 꾸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촌들 모두도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이따금씩 서울 혹은 해외에 대한 니즈를 물어봤는데 다들 큰 요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으뜸50안경'에서 쿠퍼비전을, 탬버린즈에서 000 퍼퓸핸드크림을 살 수도 없고 듁스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도 없는데 이들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사실 이 짧은 1박 2일 동안 TV와 포털에서 쏟아내는 현안들을 지켜만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당장 결혼식이 끝난 뒤 서울로 복귀해 복잡한 이슈들로 기사를 써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이 커져갔다. 그렇게 좋아하는 시드니의 한 동네가 아니더라도 서울만 벗어나면 이렇게 평화로운데 말이다. 거대 도심의 집중 포화 현상에 대한 비판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음악을 전공하려는 조카를 두고 어머니인 사촌누나에게 "무조건 서울에서 레슨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조언을 건네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기자짓하면서 배우는 다양한 나쁜 것들이 있지만 최고의 교훈은 '세상 참 단순하다'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있는자'는 계속 승승장구하고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자리인 세상에서 남들이 박수쳐주는 모습을 위해 한번 뿐인 청춘을 소비하는 게 맞나 싶은 요즘이다. 사실 이미 기득권이 된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대학이 중요하지 않고 학과가 중요하다는 사람 중에 인서울 졸업자가 아닌 이 없고, 절대로 기자 하지 말라고 말하는 선배들 중 기자를 때려친 자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래도 이런 엇비슷한 경험이 계속 쌓여가며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키워가는 것 같다. 돌연 사직서를 던지고 훌훌 떠나버리는 영화 같은 일은 없겠지만 '획일화'보다 '나만의' 무언가를 살아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한 주, 무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겠으나 생기있게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을 구별하는 사부작거림을 게을리하지 말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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