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자가 됐냐고 묻는다면 딱히 내놓을 답변은 없다. 종종 "세상에 다채로운 영향력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더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해보면 정말 내가 왜 이 일을 택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생물 전공은 도저히 아닌 것 같아 문예창작과로 전과했지만 이 험난한 취업난 속 순수학문이라니, 여차하면 오늘도 쏟아졌을 취업 관련 기사의 주인공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 집에서 치킨을 먹다가 지원했던 인턴이 얼떨결에 지금 이 직업을 갖게 해줬다.
요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내 언론인 탭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왜 기자가 됐냐"란 간결하고도 임팩트있는 말이다. 사실 이건 물음보다 한탄에 가깝다. 그래도 학창시절에 공부 꽤나 해서 주요대학을 졸업한 뒤 자부심있게 선택한 직업인데 요즘 겉잡을 수 없는 회의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 회의감에는 여러가지 근원이 존재한다. 첫째는 라떼를 즐겨마시는 데스크들이다. 대개 15년 이상 재직하신 선배들로 이제는 현장에 나가지 않고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으시는 분들이다. 이들은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MZ세대를 공략할 발제거리를 요구하곤 한다. 이에 젊은 기자들이 의기투합해 신세대(?) 다운 발제를 올리면 킬(Kill) 된다. 내가 알쏭달쏭하면 모든 구독자가 그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이거 작성하면 PV(포털에서의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겠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와중에 편집국장 필두의 회의에서는 "지면의 시대는 지나갔고 디지털화를 준비해야 한다"라며 열을 올린다. 참 아이러니하다.
두번째 회의감은 앞서 작성한 문장에서 파생된 것인데, 바로 PV다. 기자가 필요한 본질적 이야기를 논하자면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재밌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미처 모르고 지나갔을, 반드시 짚어야 할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같은 종류의 발제를 올리면 PV부터 예측하라는 데스크에 결국 자극적이고 관심을 끌 만한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그렇다 보면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 경우도 많다. 이 상황이 반복됐을 때 내가 왜 기자를 했을까 싶다.
셋째는 여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기자 직군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기렉시트'(기자+브렉시트=탈기자) 이유로 꼽히는 것이다. 바로 돈이다. 원하는 일을 하면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기자들은 정해진 라이프 사이클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서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근, 야근의 개념이 형성돼 있지 않다. 그냥 눈뜨면 출근인 것이고 담당하는 이슈가 종결되어야 퇴근할 수 있는 기이한 구조다. 이런 업무환경 속 기자들은 '합리적' 보상을 바라지만 회사는 늘 '힘들다'를 기본으로 깔며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일부 통신사와 종합지들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오늘도 시기만 미정일 뿐, 기렉시트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이것을 꼽으며 무게있는 한숨을 내쉰다.
블라인드에서 이같은 토로가 이어졌고 공감의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그중 눈길을 끄는 댓글이 있었다. 글 쓰는 직업 중 최고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대학 다닐 때 열심히 준비해 기자가 됐는데, 요즘은 단지 다른 직군을 볼 용기가 업었던 것 같다는 말이었다. 작성자는 이어 "다른 사람들은 기자가 넓은 세상을 보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라고 했다. 비슷한 곳에서 비슷하게 벌어지는 사건들, 기사를 위해 취재를 하면 비슷하게 받는 답변들. 특정 분야가 기자를 상징하게 되면 더이상 출입처 이동은 없고 그렇게 고착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오늘 나도 비슷한 기사들을 잇따라 작성하면서 동일한 이슈를 너무 많이 써 리드 일부를 통째로 외워버렸음을 깨닫게 됐다. 속보 기사를 작성할 때는 아주 유용하지만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익숙함을 넘은 매너리즘이 커다랗게 자리해 급격히 떨어진 흥미를 다시 불태울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머리가 한껏 굳어진건가 싶었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젊은이 시절은 저물어가고 있나 돌연 두렵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설렜다. 언젠가 이 직군을 희망하는 미래의 후배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기대감이 컸기에 그렇다. 만약 지금 당장 연단 앞에서 마이크를 쥐게 된다면 내가 내뱉을 첫 마디는 뭐가 될까 생각해본다. 분명한 건 "현장에서 여러분들을 뵙기를 바랄게요!"란 말은 절대 꺼내지 못하지 않을까. 오히려 "절대 하지 말고 꼭 다른 직업을 찾아보세요! 세상은 넓잖아요?^^"라는, 이제 막 수습을 달게된 친한 동생에게 건넨 말을 또다시 하게 될 것이란 확신이 선명해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