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함이 구체적으로 바뀔 때

by Paul
낯선 땅에서 설렘과 두려움은 언제나 교차했다. Paul 제공

지난 2016년 11월 25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 생활이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다. 솔직히 두려움이 컸다. 2년 동안 내가 얻어 나온 거라곤 자격증, 시험 결과 등이 아니었다. 그저 작은 방향성이었다.


아주 단순했다. 무엇을 해먹고 살지가 아닌,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리했다. 결론은 '글쓰기'였다. 나름 순항을 하고 있던 생물학도의 길을 접고 글을 쓰겠다고 부모님께 알렸을 때 돌아오는 답은 날카로웠다. 분명 배가 고플 것이며 매우 위험한 도전이니 두 번 다시 생각하지 말아라. 솔직히 살짝 쫄았던 나는 속으로만 갖고 있던 결론이었다.


전역한지 딱 5일 뒤, 한국을 떠났다. 재수에 군대까지 다녀온 나에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꽤나 보수적이었던 부모님이 이 문제에 대해선 강경했다. 너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니 반드시 다녀와라. 여행이 아니었고 거주자로 가는 발걸음을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몇 번 튕겨본 나는 결국 부모님의 뜻을 수용했다. 그렇게 머리도 민간인 만큼 자라지 않은 23살 남자가 호주로 가게 된다.


목적지였던 시드니에 처음 도착한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레임, 무엇보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무언가의 개척을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떨렸다. 딱히 계획은 없었다. 이 무계획함이 3달 정도 유지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간이 마냥 흐르는 걸 직감하고 나니, 외국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하루 하루가 마치 굉장한 허비처럼 느껴졌다.


삶 가운데 기회는 매순간 찾아온다. 그걸 잡게 되면 또다른 항로가 열린다. 그날도 그랬다. 아주 우연히, 한인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과 저녁을 먹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형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넓은 호주란 땅에 왔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눈치보지 말고 한 번 도전해봐. 이상하게 평범한 이 말이 너무나도 설렜다.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곧장 구글 지원서 폼을 만들었다. '나는 청년들을 인터뷰 할 수 있는 취재팀을 만들고 싶은데 재능기부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원해주세요' 이게 소개의 전부였다. 덧붙일 문구도 없었다. 아주 간단했던 저 말에 매력을 느끼는 청년이라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원서를 커뮤니티에 올리고 잠에 들어 아침에 눈을 떴다. 웬걸, 30명이 넘는 청년들이 지원을 해줬다. 분야도 영상, 디자인, 사진, 통역, 글 등 모두 다양했다. 전화 인터뷰를 거쳐 총 5명을 선발했다. 이게 공식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나의 첫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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