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싶냐"만 묻는 선배

by Paul
KakaoTalk_20211114_232844490.jpg 길을 걷다 문득 마주친 가판대 속 신문들을 보면 걸음을 달리하지 못한다. 선후배들의 고민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Paul 제공

"후배는 출근할 때 돈을 쓰지 않는 게 정상이다"라는 속담 같은 말이 있다. 이는 내가 과거에 근무했던 한 언론사에 첫 출근해 점심을 먹으며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뭐 몇번 정도야 선배가 기꺼이 밥값을 지불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매번 그런다고? 요즘 밥은 물론이고 커피도 5000원이 넘어가는 세상에 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것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난 정말로 회사에 출근할 때 단 한번도 지갑을 꺼내본 적이 없다. 데스크는 물론이고 나와 다른 부에 근무하는 선배, 심지어 점심시간에 나를 생전 처음 본 선배까지도 "후배는 메뉴만 고르면 된다"라고 말하셨다. 덕분에 회사 근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정복할 수 있었다. 진풍경도 목격했다. 밥을 먹고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카페를 들려 커피를 사려는데 그날 최고참인 데스크가 결제를 하려고 하니 그 데스크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가 이미 다른 후배들에게 커피를 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 선배는 데스크에게 "줄줄이 먹고 싶은 커피를 주문하라"고 하셨고 나는 출근 이후 처음 보는 선임기자 선배에게 커피를 얻어마셨다.


끝이 아니었다. 이 회사를 퇴사하고 몇개월 뒤 선배와 만나 점심을 먹는데 선배가 모두 값을 지불했다. 이에 나는 커피라도 사겠다며 카드를 꺼냈는데 선배는 "됐어 넣어둬"라며 결제하겠다는 나를 말리고 나섰다. 그러면서 선배는 "너랑 네 동기가 함께 퇴사하고 나니까 일을 할 맛이 나지 않는다"라며 따뜻한 말을 잇따라 건네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턴 때도 그랬다. 밥 혹은 커피를 먹거나 마시러 가는 선배와 인턴들에게 차장, 데스크들은 자신의 카드를 주저없이 꺼내주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선배들은 "뭐 먹고 싶냐"라고 물을뿐, 절대로 "다음엔 네가 쏘는 거다"라는 말은 하지 않으신다.


이 척박한 언론 생태계에서 내가 좋은 선배들만 마주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지만 아낌없이 후배에게 나누는 게 언론 선후배 간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장에서 갖가지 일을 겪은 뒤 기사를 작성했을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여전히 내려오는 문화가 아닐까.


그래서 난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만약 나에게도 후배가 생긴다면 이같은 선배가 되리라. 이직에 이직을 거친 나는 비로소 후배가 생겼고 내가 선배들에게 받은 걸 이들에게 똑같이 넘겨줬다. 그러자 후배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알쏭달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분명 2021년 트렌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결제 순간에 'N분의 1'을 해야 하는데, 아니면 밥은 내가 커피는 네가란 공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급기야 캐셔 앞에서 서로 값을 지불하겠다며 카드를 뺏고 뺏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결제의 영광을 후배에게 뺏기지 않았다. 그렇게 배웠고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


흔히들 기자는 '꼭 반쯤 화가 나 있다'는 웃픈 평가를 받곤 한다. 평소의 내 모습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매일 날카롭게 글을 써대니 삶에서도 마치 시한폭탄처럼 어마무시한 버튼을 품어졌나보다 싶었다. 대소사에 무뎌지는 나처럼 후배들도 변화의 과정을 거치겠거니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이같은 명암을 가진 직업에 뛰어들었는데 동료가 되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선배들의 마음도 이랬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특별히 무언가의 조언을 전달하지 않아도 값싼 커피만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드릴 힘이 솟아나니까.


"언젠가 이 바닥을 뜬다"는 예언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만큼 흘러가는 시간 속 나를 스쳐가는 선배들의 수 만큼 후배들도 많아지겠지. 메뉴만 고르면 된다는 선배들처럼 아주 멋있게는 못해도 소소한 위로를 전하는 동료가 됐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 공유되는 마음을 새긴 후배가 있다면 그는 언젠가 만날 자신의 후배들에게 이 문화를 전파해나갈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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