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 앞에 선 후배들에게

by Paul
원하는 일을 한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외국 방송국에서도 치열한 현장의 모습을 보니 당시에 내 심장도 뛰었던 기억이 있다. Paul 제공

나를 아는 지인들이라면 한번쯤 들었을 이야기다. 지난 2017년 하반기까지 나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아주 막연하게 의료인이 되겠다는 꿈을 미련처럼 버리지 못하고 2학년 1학기까지 마쳤다. 당시에 미래를 떠올려보면 참 답답했다. 주변 동기들을 보면 아직 공부를 하지 않은 물리와 화학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주에 머무는 동안 활동했던 비영리 취재팀을 크게 키울 용기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글밥을 먹고 살겠다는 선언인 셈인데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는 TV만 틀어도 그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날, 쳐다보기도 싫은 두꺼운 영문 생물책을 붙들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려니 정말 싫었다. 공부가 내 취향도 아니었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약학대학은 고사하고 제약회사 연구원쯤이 모두의 목표라고 하는데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 순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주변 모든 만물이 느려짐을 느꼈는데 비로소 '띵'하고 머리와 무릎을 탁 치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어차피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원하는 공부는 해보고 졸업해야지 않겠나 싶었다.


이듬해 학기를 시작하기 전 전과 모집 공고에서 문예창작과도 학생을 뽑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불도저 같이 결심을 밀고 나가기 위해 전과를 위한 자기소개서와 몇가지 서류를 준비해뒀다. 그리고 부모님이 퇴근하신 뒤 밤에 거실로 모이게 하여 내 생각을 전했다. 당시 거실에 던질 만한 물건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그랬다면 난 날라오는 물건들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고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고, 그러면서 "취업도 못한다"라는 말씀만 반복하시니 나도 달리 답할 건 없었다. 뭐 그래도 다음날이 전과 지원 마지막 날이어서 난 그냥 지원할 속셈이었다. 방학이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뒤 노트북을 열고 전과 지원창을 켜뒀다. 그런데 별안간 휴대전화가 울렸고 발신자였던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지원하라"는 짧은 답변을 주셨다.


그렇게 제시어로 수필을 하나 창작하는 시험을 치르고 문예창작과 학생이 됐다. 나를 향한 학과 학생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개 예체능도 순혈주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입시를 치르고 들어오지 않은 나는 일종의 'variant' 였다. 다행히 학과 수업은 혼자서 작품을 창작하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나도 별다른 도움의 손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이 문창과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 되리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약간 중2병 같은 대사지만 이공계를 위한 취업시장이 형성된 오늘날 이같은 결심이 없으면 삶이 흐지부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것 같았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내 손엔 항상 노트북이 들려있었다. 강의실에서는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으면서도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 생일과 회사 창립일이 똑같은 곳에서 사회공헌 사업을 쫓아다니며 글을 쓰고, 의경 복무 당시 추위에 떨며 지켰던 삼청동의 한 공관 혹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지휘하는 관제실 등 자리들에도 잇따라 방문해 역시 글을 썼다. 실험실 창업 CSV 론칭을 위한 석학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고등학교 때 꿈꿨던 대학이 있는 포항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반오십을 훌쩍 넘겨 동기들은 하나둘씩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도 원하는 분야의 인턴을 하겠다며 쿨하게 휴학계를 냈다. 그러는 내게 학과장 교수님은 "나이도 많은데 빨리 졸업하는 게 우선 아니냐"라는 우려를 주시기도 하셨다. 어쨌든 한길만 'Joji'고 있으니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면 분명 기회는 오지 않을까 했다.


감사하게도 이런 '베타 테스트'가 기자짓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근간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애증 관계와도 같았던 대학을 손쉽게 졸업할 수 있었다. 과거 잦은 이직은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오늘날 자신에게 잘 맞는 일 혹은 기업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하는 청년들 가운데 나도 편승하여 나아갔다. 언제 '점프'란 시동이 꺼지게 될까 사실 고민도 많지만 어쨌든 꽤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회사에 비로소 정착은 했다. 이 시기와 맞물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글밥을 먹고 싶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소소한 나눔을 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토크콘서트를 수락한 뒤 이 행사에 참여한 동문들을 봤다. 대부분 공기업 혹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외국계거나 공무원이었다. 소위 세상에서 힘 좀 쓰는 그런 직군들이었다. 씁쓸하기도 했다. 분명 꿈이 직업이 될 수 없고 취업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길을 충분히 찾아나설 수 있을 텐데 선배라고 부른 모든 사람들이 이른바 '알아주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약 근사한 곳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기회였겠구나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지표로 삼는 통계에 내가 들어간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순간이었다.


요즈음 '호주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겠지"라는 답을 내놓는 나를 보고 있자면 현실에 묻혀진 어른이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 말은 삼성전자에 다닌다고 현실순응자라는 비판을 보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단지 유튜브에 수많은 '취준생' 브이로그를 보면 아주 아름답고 멋진 청년들이 대기업에서 떨어져 울먹이는 현실이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대체 취업이 뭐길래 단 한 번 뿐인 청춘을 이런식으로 소비하게 만들었을까. "대학 아무 곳이나 가면 되지"란 사촌형의 말에 "너가 명문대학을 나와서 그런 소리 한다. 그들의 마음을 죽어도 모를껄"이라고 답한 사촌누나의 말을 꼽십어본다. 나 역시 이제는 '안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건가.


좀 오지랖이지만 근래에는 카페를 방문했을 때 무언가 취업 관련 자료를 붙들고 끙끙거리는 청년에게 다가가 '네 진짜 꿈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되게 꼰대스러울 수 있는 생각이지만 '판교에서 맥북 들고 영어 이름은 쓰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들 중 왜 그곳의 일원이 돼야 하는지는 단 1분도 고민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어서 그렇다. 나를 혹은 다른 동문들의 강의를 찾아 들어오는 후배들도 비슷한 생각과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라고 하니까 멋있어보여서, 그런데 내가 초록창의 발전을 위해 전공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예를 들어 이렇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난 항상 "전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다"라고 답한다. 이후 내가 다시 근황을 되물으면 '시간이 없어서'라는 것과 같은 비슷한 변명이 돌아온다. 하루에 수천만원씩 벌어들이는 맛집이 TV에 나와 비법을 공개할 때 PD들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비결을 공개하면 타격이 없냐'는 말이다. 사장님들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공개해도 절대 안따라하던데요'라고.


외국어를 전공한 후배와 몇 달 전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특이한 언어여서 선후배들 대부분은 대학원을 준비하거나 외교부 공무직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이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하고픈 일을 생각해본 뒤 구체적인 졸업 다음 스텝을 구상해보겠다고 했다. 얼마 전 연락이 닿아 결과를 물으니 후배는 정말로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뒀다. 그리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몇가지 장치도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 다가온 졸업의 문턱 앞에 마냥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선택과 결론을 내린 후배가 자랑스러웠다.

이제 대학교 4학년이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신감이란 무기는 그 곁을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또 평생하고 싶은 일을 위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분명 기회는 온다. 기회가 왔는데 내가 할 수 있다는 증거가 없다면 땅을 여러번 치고 후회를 해봐도 저 멀리 떠난 기차는 태우지 않은 승객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뼈저린 현실만 알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토크콘서트에서 앞서 언급한 후배가 딱 1명만 더 나와도 내 마음은 여과없이 전달했다 생각하고 아주아주 날카로운 칼날을 열심히 준비해보겠다. 꼭 그 후배를 몇년 뒤 같은 토크콘서트에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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