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이직

by Paul
Screen Shot 2021-11-27 at 9.22.18 PM.png 물려 받는 노트북만 사용하던 나는 '당연히' 최신 사양을 제공한다는 데스크 말에 좀 놀랐다. Paul 제공

과거 학부시절엔 어디든 좋으니 내가 다닐 수 있는 직장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따금씩 방문했던 광화문 거리를 거닐면서도 이 많은 회사 가운데 내 책상이 있을까 싶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까지 한 나로서는 취준의 과정은 마치 모래알 속 아주 귀한 금은보화를 찾는 것 같았다. 그만큼 막연하면서도 내가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취업은 수월했다. 뉴스에서 연일 구직자가 역대 최고치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글쎄 썩 공감은 가지 않았다. 원하는 길 딱 한 가지만 죽도록(?) 팬 결과일 수 있겠지 스스로 대견하다 토닥여봤다. 그래도 사람이 만족하지 못한다고, 나는 철새처럼 이직을 잇따라 시도했다. 직장인이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참 다채로운데 기자의 경우 데스크를 비롯해 취재 환경, 인프라 등이 주요한 이유로 선정된다. 아무튼 잠자코 다닐 수 있었지만 젊을 때 여러 시도를 해봐야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아 기회가 매우 작아보여도, 조금 무모한 시도처럼 보이더라도 무작정 도전장을 내밀었다.


매체별로 특징이 있는데 신문의 경우 대개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종합지이든 경제지든 편집국은 데스크들이 포진돼 도서관보다 조용하다. 사실 기사를 쓰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만은, 다소 경직된 분위기 가운데 일을 하곤 한다. 그래서 기자들의 얼굴도 무서운 경우가 많은데(소위 기자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화난 상태라고), 이직을 선언한 내게 전에 없던 따뜻한 말과 선물을 건넨 선배들을 보면 회사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당연히 온라인 기사를 작성해 실시간 반응을 얻고 내 이름이 박혀 멋지게 짜여진 지면을 다음날 새벽 집 문 앞에서 마주하면 뿌듯하긴 하다. 영화 '1987' 시대의 기자생활을 겪은 선배들에 비하면 젊은 기자들의 생활은 다소 심플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세상에 다채로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돈을 벌겠다고 선택한 직업이 조금 이라도 의미를 느끼며 사회에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만족'보다 '도전'이란 단어를 꺼내들어 이적을 시도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현재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고 어느 누구도 내게 날카로운 손을 날릴 이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기회는 또 있겠으나 언제 다시 내게 올지 모르지 않나. 그래서 붙잡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방송국 직원이라고 하면 '우와' 탄성부터 나왔던 기억이 있다. 꼭 PD가 아니라도 방송국에 근무한다고 하면 뭔가 그랬다. 좀 특별하면서도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이런 곳으로 이직을 했다니 지하철역에서 내려 사옥으로 들어서는데 발걸음 마저 긴장감에 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사옥 안 직원들은 저마다 할 일로 분주해보였는데 나만의 착각일 수는 있겠지만 다들 '트렌드'를 한껏 입은 것 같았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라 쓴소리를 날린다면 할 말을 없지만, 분명 신문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아마 사옥이 비교적 신축이라 그랬나보다. 사옥 뿐이겠는가. 언론사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물려받는' 노트북이다. 매체별로 다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곳들은 전부 그랬다. 어떤 곳은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처음 샀던 노트북 사양에 머물러있기도 했다. 그걸 들고 취재를 간다고 생각해보라. 특히 여름에는 백팩에 노트북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다니면 퇴사의 마음이 간절히 든다. 노트북을 받으러 오라는 말에 나와 같이 신문에서 넘어온 선배도 '당연히'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채 뜯지도 않은 최신형을 정보팀에서 건네준 것이다. "아무튼 디지털 시대에 모든 걸 최신으로 누려야 한다"는 윗분들의 의중이라는데 너무 감격스러웠다. 심지어 n년 마다 바꿔준다는데 여기 뭐지.


틀에 박힌 생각을 하나 더 말하자면 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특징이 있었다. 각종 동아리를 섭렵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빠지지 않고 한다. 최신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당연히 다음날 줄거리를 읊는다. 도서관에서 좀처럼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시험을 치르면 항상 과 수석이다.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이런 이미지 다들 알 것이다. 내게 업무 사안을 전해주는 선배들이 그래보였다. 들었던 말 중 일부를 공유하자면 "돈이 얼마든 장비를 아끼지 마라" "열려있는 조직이니 필요한 조처가 있다면 과감하게 말하라" "기사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지원해줄 수 있으니 디지털 콘텐츠를 얼마든지 기획하라" "회사 어디든 일만 하면 되니까 선배들에게 짱 박힐 수 있는 곳을 물어보라" 등이었다. 내 피가 벌써 다채로워졌나?


배우 진기주가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한 말이 있다. 삼성 신입사원 시절 전 계열사가 다함께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때 피가 일명 '파란 피'로 변한다고. 누군가 내게 회사의 향방과 비전 등을 주입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조직에 스며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철새 같은 내가 비로소 '이번엔 좀 오래 엉덩이를 붙여야지'라는 말을 했으니 말이다. 한 번도 신규 입사자들을 불러 면담을 한 사례가 없는 TV에서만 보던 대표가 어느날 대뜸 불러 "기대가 크다"며 계열사 선물을 전해주시는데 뽕(?)이 차오르지 않고 버틸 수 있으랴.


물론 내부적으로 치열한 사정은 어느 회사든 있지 않겠는가. 선배들도 "여기도 다른 곳들과 똑같다"며 으름장을 놓아주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뒤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조직인 건 틀림없으니 나아가자!"는 말을 덧붙여주신다. 어딘가에 짱 박혀 뉴스만 생산할 수 있지만 도전을 부추키시니 나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어느정도 적응이 되면 슬쩍 모종의 작업을 시작해볼까 싶다. 데스크가 "성공 여부는 생각하지 말라"니 기꺼이 나서 사고를 잇단 치는 게 또 후배의 '미덕'이라 고개를 끄덕여본다.


어느날, 전날 당직을 잘하고 회사로 들어온 후배에게 "이직하겠다"는 말을 들은 선배의 마음은 어땠을까. 쓴소리가 들어올줄 알았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직이 트렌드인데 잘 맞는 매체를 꼭 찾았으면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였다. 기자를 시작한 첫 매체 선배도 옮기겠다는 내게 "현장에서 볼테니 밥 먹고 싶을 때 주저없이 연락하라"고 말해주셨다. 이런 선배들을 잔뜩 등에 업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왔다. 적어도 이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어야지 다짐을 해본다. 나아간 그곳에서 사회 저변을 올바르고 성실히 보도한다면 내가 그 매체 출신이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 되지 않겠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그래 너는 반드시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