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출퇴근을 견디는 이유

by Paul
Screen Shot 2021-12-04 at 9.19.52 PM.png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대중교통의 빈자리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 기회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Paul 제공

얼마 전 출근길에 들었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코너에서 뉴스를 잇따라 전하던 진행자가 했던 말이 있다. "이 라디오를 듣고 있다면 이미 일어났다는건데, 그 가운데 직장인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아침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는 말이다. 찌뿌등한 몸을 이끌고 꽉막힌 도로 위에서 잠자코 듣고 있자니 '내가 대단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대학교를 지원할 때 기준을 돌아봤다. 면접을 보러 포항까지 갔던 나는 다니고 싶은 대학교 기준이 거리는 아니였던 것 같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이뤄갈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 등이 갖고 있느냐, 이를 중점으로 부수적인 조건들을 따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도 집과 회사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와 구성원, 발전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어려운 취업난 속 뭘 따지고 말고 할게 어딨겠는가. 뽑아주면 '감사합니다'라며 열심히 다녀야지.


감사하게도 이전의 회사들은 모두 집 앞에 서울 직행 광역버스로 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가장 처음 언론사에 발을 붙였던 언론사는 이 버스가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나오는 정류장에 있었다. 그 다음 회사는 버스의 종점에서 내리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번에 이직하기 직전까지 다녔던 회사도 종점에서 걸어가거나 조금의 편함을 위해 버스를 한번 타면 됐다. 어쨌든 1시간 내외에서 대중교통으로 룰루랄라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뜨수운 밥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번에 회사를 옮기면서 역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다채로움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언론사는 경직된 분위기의 편집국이 대부분이었다. 다음날 신문 발행을 위한 기사를 마감하기까지 숨죽이고 일만 했다. 마침내 마감을 하면 대화가 이따금씩 터져나왔으나 아주 잠깐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마치 고등학생 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독서실을 가는 기분이었다랄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업무환경이 썩 행복하지는 못했다. 일은 일대로 많이 시키면서 그에 따른 보상 등은 매우 협소하게 줄이려고만 하니 어느 누가 마음을 두고 다니고 싶어하겠나. 나 역시 이같은 목소리들을 줄지어 들으면서, 또 직접 경험을 하면서 이직을 하기로 마음에 결심을 내렸다.


웬걸, 출퇴근 시간이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이 걸렸다. 회사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길을 아무리 찾아봐도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해당 시간이 나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분명 일어서서 가고 있었는데 잠을 자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탄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감았는데 어느새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해있었다. 차를 갖고 가면 그나마 나은데, 왕복으로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더 막힌다. 그래서 매번 저녁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데, 밥을 먹고 도로에 나와도 교통체증은 줄지 않았다. 그럼 난 '밥이라도 빨리 먹었으니 다행이다'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출퇴근 시간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급여보다도 우선 순위가 되는구나를 요즘 많이 느낀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고, 퇴근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면 다음날을 위해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는 아주 맞는 말이었다. 지방 출신이 아니더라도 직장 가까이에 원룸을 얻는 지인들이 이런 마음이었나 싶었다. 의지에서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독립을 서둘러 준비해야 하니 그 과정에 아득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바로 어제 이 회사로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 이슈로 오전 내내 매달렸던 기사가 있었다. 오후에도 관련 이슈를 챙기며 기사를 쓰고 오후 5시쯤 모든 걸 털었다. 그러던 중 같은 팀 선배가 옆으로 슬쩍 오더니 "이 기사에서 다른 야마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안 물어봤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취재를 해 기사를 쓰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동일한 인물을 연달아 기사로 작성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기사 프로그램을 닫았는데 '한 번 해보면 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퇴근을 준비하던 한 선배를 붙잡고 취재를 나눠서 하자고 했고 오후 7시가 되어서야 기사가 출고됐다. 내가 기사를 마무리 할테니 먼저 퇴근을 하라고 계속 권유했으나 선배는 기사가 전송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데스킹을 봐줬던 선배도 "기다리는 것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소소한 응원을 보내주셨다.


원래 계획은 칼퇴를 한 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오후 7시까지 먹을 수 있는데 당연히 난 먹지 못했다. 차를 끌고 강변북로를 타니 내비게이션 속 도착시간은 계속 늘어났다. 이날 추가로 작성한 기사는 포털에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불금'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낸 셈이다. 그래도 행복했다. 쓰고 싶은 이슈에 대해 원없이 취재하니 말이다. 특히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안 돼"보다 "해보자"로 독려하며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으니 매체력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인정이 절로 나왔다. 비록 일주일 중 5일을 좀비처럼 살아내고 있지만 기자 해보겠다며 이 바닥으로 들어와 지낸 것 가운데 가장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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