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이 만든 전에 없던 시상식

by Paul
Screen Shot 2021-12-12 at 8.51.42 PM.png 2017년 베트남에서 시상식을 개최했을 당시 현지 K팝 팬들의 함성은 한류의 분명한 물결이었다. Paul 제공

어제 TV를 틀었는데 때마침 1년에 한 번 뿐인 음악 시상식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진기자들이 포진된 레드카펫에서 연달아 사진을 찍는 연예인들을 보며 '재미없구나' 싶어 채널을 돌렸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 딱히 볼 것도 없었던 나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보다는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아 잠자코 소파에 앉은 것처럼 채널도 고정을 시켜뒀다. 애플뮤직 데이터를 심사에 반영해 차별화를 뒀다는 프로모션은 모르겠고 일단 AR, XR 구현이 눈을 즐겁게 했다. 시상식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2017년 겨울 방문했던 베트남 일정이 떠올랐다.


내가 기자를 하기 전 3년간 출입(?)했던 곳이 있다. 이제 막 합류를 했을 때인 2017년 하반기에는 내년 사업을 본격 론칭하기에 앞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었을 시기였다. 당시 가장 중심이 됐던 사업 가운데 하나를 DMZ에 이어 해외에서도 돌려봤던 바 있다. 이 일정에 합류할 사람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난 아쉬운 마음을 삼키고 있었는데 웬걸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란 업무로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난 막차(?)를 타고 난생 처음 베트남으로 가게 됐다.


여러 일정을 뒤로한 채 사업에 참여한 학생들 만큼 나도 무척 기대하고 있던 일정이 있었다. 문화를 만드는 기업의 다양한 계열사 가운데 상암에 위치한 회사가 지난 1999년부터 주최하고 있는 행사였다. 이미 국내를 넘어 홍콩과 일본에서는 이 행사가 개최될 때를 기다리는 수많은 해외팬들이 포진돼 있었다. 2017년에는 K컬쳐 열풍이 막 일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개최를 했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이라면 알겠지만 해당 국가에서 한국을 향한 열기는 꽤 높았다. 이를 실감케한 사례 중 기억에 남는 건, 외국어학원에서 전국적으로 수강률이 높은 과목이 한국어였단 것이다. 그런 곳에서 유례 깊은 음악 시상식 개최라니, 국내 아이돌의 베트남 팬들은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겠나.


시상식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해당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시상식이 열리는 건물 주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모인 팬들로 가득했다. 이윽고 시작된 행사에서 난 진풍경을 목격하게 됐다. 한국 아이돌의 노래를, 분명 베트남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였는데, 단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따라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팝스타들이 내한 공연을 할 때 떼창으로 감동받았다는 기사들도 있으니 이건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그대로 이역만리 머나먼 외국땅에서 외국인들의 목소리로 한국어 노래를 들으니 참으로 놀라웠다.


물론 한류는 2000년대 초반 방영된 '대장금' 전후부터 시작된 붐일 것이다. 이같은 각종 콘텐츠들이 쌓여 2017년에 빛을 발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이날 시상식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에 따르면 행사를 개최한 회사에서 제작한 아이돌들이 한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구나 싶었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넷플릭스'가 투자한 국내 콘텐츠들이 전세계적 인기를 끌기 전, K컬쳐를 이끌었다 회자되는 콘텐츠들 다수는 시상식을 개최한 회사의 것들이었다. 절대적이다 편가르기를 할 순 없지만 '문화를 만듭니다'란 문구를 부정할 수도 없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이 회사에서 론칭한 댄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크루들이 국내 방송국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하지 않았나. 정말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시상식은 국내에서만 개최했다.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알았는지 시상식 피날레를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한 댄스 크루들 무대로 꾸몄다. 이 무대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함께 했다. 누구나 한번쯤 홀로 무대에 오르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은 할 텐데 어쨌든 그 열망을 실천한 것 아닌가. 특히 주목을 받았던 건 내가 참석했던 2017년 시상식 때 해외팬들을 떼창으로 인도한 프로젝트 그룹의 재결성이었다.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나도 큰 거실에서 하필 TV 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청했으니 팬들은 오죽했으랴. 문화를 만드는 건 단순히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는 것이 아닌, 지나간 것도 다시 끄집어내어 활용할 줄 아는 것임을 확실이 보여줬다.


스포츠 출입을 하는 선후배들이 귀에 딱지가 들어앉도록 듣는 건 "네가 그 팀 프론트냐"란 말이다. 대개 연예판의 경우 좋지 않은 이슈가 생겼을 때 실명을 곧바로 까는 게 관례(?)인데 스포츠는 그렇지 않다. 구단 측 공식입장이 나올 때까지 이슈의 중심에 선 선수의 이름을 이니셜로 표기한다. 가량 의혹이 확인되더라도 섣불리 JOJI는 기사를 쓰지 않는다. 그럼 데스크 혹은 동료 기자로부터 내가 처음 언급했던 말을 듣게 된다. 그만큼 나와바리(본인 출입)를 쉽사리 건드리지 않는 관행이 있다.


난 이제 연예부도, 문화부도 그렇다고 산업부 나와바리(본인 출입을 부르는 말)도 아니니 이렇게 구구절절 애틋하게 써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이번 시상식 마지막 무대가 끝난 뒤 회사 로고가 아주 크게 떠오른 장면을 보며 '이건 사진으로 남겨져 내년도 회사 PPT에 반드시 등장하겠다'는 불순한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일련의 사건으로 K팝 역사에 아주 큰 오점을 남겼으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채찍을 품어야 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탓에 축소된 시상식이라도 참석한 일부 외국팬들이 중계 화면을 통해 잡히는 모습을 보며 이 시상식이 'K팝의 글로벌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비단 보도자료에만 등장하는 호평은 아닌 것 같았다. 이에 언젠가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해외 개최를 재개했을 때 한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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