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도 확인하고 되묻는 이유

by Paul
KakaoTalk_20211230_205437178.jpg 지난 2019년 매일경제에서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프레스석에서 취재를 했었는데 현장에 있는 것 만큼 좋은 확인하기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Paul 제공

처음 연예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가 들인 습관은 '확인하기'였다. 대개 연예계 사건사고의 경우 소속사에서 나온 입장은 복붙으로 전파된다. 이에 직접 소속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다시 되묻는다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엇비슷하다. 그래도 타 매체 기사를 통해 나온 소속사 입장은 내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기자의 기본은 확인하기라고 배웠으니 단 한줄짜리 입장이라도 꼭 전화를 해 확인했다.


사실 귀찮은 과정이지만 때론 업무의 진전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소속사는 정해진 답변을 '해야' 하지만 이외의 회사나 기관 등은 그렇지 않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연예계 관련 이슈가 터졌을 때 정해진 답변을 못한다. 채널이 일원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이른바 '얻어걸리기'가 가능한데, 듣고 싶은 답을 유도하면 해당 기관 직원은 어느새 내게 가장 좋은 취재원이 된다. 이렇게 단독이 나온 경우도 많다.


내가 이런 취재를 하는 이유 중 또 다른 이유는 선배들의 칭찬이었다. 편집부 선배가 어느날 내게 "너가 전화를 걸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어떻게든 원하는 답변을 받아낸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적이 많았다. 또 어느날은 되게 무뚝뚝하기로 유명했던 선배가 밥을 먹다 대뜸 "넌 나보다 훨씬 좋은 기자야"란 아주 오글거리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이어 "요즘 확인하지 않고 기사 쓰는 게 풍토처럼 퍼졌는데 단 몇자라도 꼭 확인하는 건 다른 기사를 쓸 수 있는 기본이 될 거야"라고 덧붙이셨다. 이쯤이었나, 선배들의 말이 내게는 양심과도 같이 자리 잡아 짧은 기사를 쓰더라도 꼭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회사를 잇따라 옮긴 뒤 현재 회사에서는 사회 기사를 쓰고 있다. 그래서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소속사의 경우 홍보팀 인원이 적고, 만약 홍보팀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그 윗 라인으로 전화를 걸면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 분야는 너무 광범위했다. 대개 '관계자에 따르면' 혹은 '익명을 요구한 A씨'로 시작되는 기사가 많았는데 이 당사자를 찾는 건 마치 사하라 사막에서 꽁꽁 숨겨진 색깔 다른 모래알을 찾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한 뒤 데스크에게 "못찾았습니다"는 말을 할 수 없지는 않은가. 사표를 쓰기 싫다면 기사를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난 회사에 출근할 때면 보도국 내 전화방에서 1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은 적도 많다. "기자님 오늘은 전화 안 하실거죠"란 말까지 들은 뒤에야 결국 답을 갖고 전화방을 나올 때면 이래서 기자를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이를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면 "무서운 직업병"이라며 핀잔 섞인 우스갯소리를 던지신다.


어쨌든 매번 답을 들고 오는 후배를 본 데스크와 팀 선배는 '답이 없는 문제'를 건네기 시작하셨다. 지난달 회사에 들어가 상쾌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선배가 쓱 옆으로 오더니 "이것 좀 찾자"라며 기사 한개를 공유하시고 가셨다. 타 매체 단독 인터뷰였는데 인터뷰이를 찾으란 말이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를 시작한 셈이었는데 나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사람의 연락처를 2시간 만에 찾아냈다. 그리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나온 내용이 아닌 이야기를 듣게 됐고 단독 기사를 출고할 수 있었다. 이 기사로 사내에서 포상도 받았으니 확인하기란 과정을 통해 얻은 후속 결과가 꽤 좋았던 것이다.


이런 선배의 은밀한(?) 제안이 최근에도 있었다. 아직 출근 전이었는데 잠에서 채 깨지 않은 나의 옆에 있던 폰이 별안간 진동을 울렸다. 메신저를 열어보니 팀 선배의 톡이었는데, 또다시 내게 기사 하나를 공유하시며 "인터뷰 좀 하자ㅎㅎ"였다. 이번에도 김서방 찾기 시즌2였다. 취재원에 대해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사를 가만히 보니 사용된 사진이 완벽하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았었고 간신히 찾은 단어 앞부분을 유추해 취재원이 속한 회사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퀘스트를 해낸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과거 대기업 사회공헌부서에서 글을 쓸때가 떠올랐다. 이날 썼던 기사가 사회복지시설과 관련이 있었는데 현재는 내가 쓴 글이 더 많은 파급력이 있는 채널을 통해 나가는 것 아닌가. 그래서 취재를 하는 동안 더 애정이 갔고 기사가 나간 뒤 취재원에게 "앞으로 많이 베풀겠다"는 다짐을 전해들을 수 있어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했었다. 이날 기사가 전날 나갔던 타 매체 기사의 내용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바 있는데 확인하는 과정으로 더 풍성하게 전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뿌듯했던지.


이런 적도 있었다. 주말 당직을 서는데 아주 큰 정치적 이슈가 터졌다. 대선 기간이니 공보들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취재에 잘 응해줬었는데 이날 터진 이슈와 관련해 아무것도 확정된 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미 매체들은 이슈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주류에 편승하는 법은 쉽다. 하지만 매체력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난 받아적지 않고 취재한 대로 "확인된 바 없다"고 썼고 공보로부터 똑같은 답변을 전해들은 정치부에서도 당연한 것이라며 거들었다. 이후 선배들의 취재를 통해 이슈 관련 몇가지 사안을 특정할 수 있었고 소구력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오늘도 어딘가에 박혀 커피를 홀짝 거리며 일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 있었던 몇가지 큰 이슈에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내 이름과 이메일이 기사 맨 아래 적혀 포털로 출고가 되는데 풍문으로 쓴 기사를 두고 조회수가 잘 나왔다며 "나 기자요" 할 수 없지 않은가. 정확히 확인하는 만큼 자신있는 기사가 되고, 독자들에게 올바른 팩트를 알리는 근간을 다지게 된다.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앞으로도 기자밥 먹으며 꺾이지 않고 싶은 모토이자 신념으로 타협하지 않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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