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다다른 목적지엔

by Paul
Screen Shot 2022-01-02 at 12.14.01 AM.png 저녁시간이 되면 하루를 마친 다양한 모습이 사람들이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는 건 한국, 호주 할 것 없이 비슷하다. Paul 제공

얼마 전 회사로 들어갔을 때 '2022년 키트'를 받았다. 키트 안에는 다이어리를 비롯해 달력, 메모지 등이 동봉돼 있었다. 최근 주변 지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니 새해 다이어리를 구입해 계획을 잇단 세우는 모습을 접했는데 나는 새햐안 다이어리에 뭘 적어야할지, 아니 정확히는 이 다이어리가 필요는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새해 계획이 뭘까, 도대체 내 삶의 계획이 있긴 하나 잠자코 생각했는데 뚜렷한 답을 꺼낼 순 없었다.


지난 1년을 돌아봤다. 놀랍게도 꽤 다채로웠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지난해 무려 3개의 회사를 다녔단 사실이다. 두번의 이직을 한 셈인데 어디서 이런 무모한 용기가 솟아올랐는지 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어쨌든 이 무모한 도전 덕분에 앞으로 향후 몇년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다 싶은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사람은 두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또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사람과 얼마간 혹은 아예 짐을 풀어 정착하는 사람. 어느 경우도 정답은 아니고 칭찬만, 비난만 받을 수도 없다. 2021년까지의 나는 첫번째였다. 시작은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을 하면서부터였는데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삶이었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은 목적지였으나 여러가지 밑그림을 촘촘하게 그려가며 도달을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1월 1일의 나는 당시 꿈꿨던 어렴풋한 미래 모습에 어느정도 걸맞은 직장인이 됐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마침내'인데, 큰 변화는 없었다. 아 달라진 모습은 있었다. 발제 압박과 취재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같은 날들이 쌓이고 쌓여 이전보다 내재된 화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여느 직장인들처럼 퇴근 후 집구석 어딘가에 박혀 유튜브 새로고침을 하염없이 하며 다음날 출근을 맞이하고 있다.


요즘 내 눈길을 끄는 유튜브 콘텐츠가 있다. 호주에서 수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인데 그는 최근 시드니로 여행을 가있다. 당시 그가 살 때 갔던 음식점과 거리, 함께 지냈던 사람들 등을 잇따라 만나며 추억여행에 나선 것이다. 시드니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나로선 매우 반가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는 시국 속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년전 약 2주간 다녀온 바 있는데 영상을 통해 전해진 그곳은 여전히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문득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복학을 하고 문예창작과로 전과를 했을 무렵이 생각났다. 취업이 보장된 생물학과에서 예술대학으로 전과를 하는 건 오늘날 '취업하기 싫다'를 돌려서 말하는 것과 엇비슷하다. 이만큼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창과를 간건데 막상 예술대생이 되고 나니 막막함은 하늘을 찔렀다. 학과 선배들의 취업 현황은 정말 처참했는데 애초에 '등단'은 꿈도 꾸지 않던 난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한 성공적인 발판이 필요했다.


그때 떠올랐던 게 호주 유학이었다. 호주에는 문창과 같은 학과는 없으니 이름만 들어도 멋드러진 '저널리즘학과'로의 유학을 추진해볼 심산이었다. 아니면 호주의 전국 단위 전문대인 'TAFE'의 관련 학과 졸업 후 현지 취업도 하나의 길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기까진 이상이었고, 엄청난 돈의 학비와 유학의 성공 여부, 무엇보다 20대 중반인 내 나이가 큰 걸림돌이었다. 실패하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홧김에 한 생각인 걸 알아차렸던 학과장 교수님은 내게 "갈거면 학부를 국내에서 마치고 석박사를 하러 가면 된다"고 말리셨다. 사실 누군가 말려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원하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교수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국내에 적을 둔 이상 이민 따위 같은 모험은 이제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어제 오늘은 호주 유튜브 콘텐츠를 보며 캐셔라도 좋으니 그냥 고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드니 촌구석에서 지극히도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단 생각을 해봤다. 다시 돌아가도 그때 그 감정을 느낄리 만무하겠지만 영혼 없이 시체처럼 노트북을 두드리는 현재의 나보다는 좀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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