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도 안 마시는 기자

by Paul
Screen Shot 2022-01-08 at 5.59.01 PM.png 선배들과 하는 식사가 늘 기다려진 이유는 회사 주변의 최고 맛집을 섭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aul 제공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커피는 그저 밥을 먹은 뒤 으레 마시는 하나의 루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왜 아침마다 카페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됐다. 생명수와 같은 것인데 '속에 천불이 나 겨울에도 아아를 마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커피를 찾게 되니 하루에 4잔을 마시는 날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커피를 부어라 마셔라하는 내가 흔히 직장생활에 활력을 주는 또다른 '친구'인 술은 그 누구보다도 멀리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20살 때부터 마시지 않아서 그냥 쭉 쳐다도 보지 않게 됐다. 술을 마셔야하는 자리도 특별하게 없었다. 기껏해봐야 대학 동기 혹은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밥을 먹을 때 정도인데 마시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수많은 직업 가운데 기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기자들의 술문화는 이 세상 흐름에 희석되지 않았다. 심하면 심했지. 제정신이 아니어야 기사가 잘 써지고 지면 편집이 잘 된다는 선배들의 전언도 있었다. 문화를 보면 군대에 재입대하는 것과 동일한 이 바닥에서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신문사 합격증을 받은 뒤 고민에 빠진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생활을 시작한 첫 회사에 첫 출근날 점심에 선배들은 당연하게 술을 까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기업에서 언론사로 넘어온 동료에게 들은 말인데 정말 충격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당연한 분위기 속 술잔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내가 받을 차례가 됐을 때 "하하 전 받아만 두겠습니다"는 말을 과감히 내뱉었다. 선배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내용의 대부분은 "잘못 뽑았다"였다. 장난이 섞였으나 꽤 뼈있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나만 맨정신으로 점심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날 퇴근길에 갖은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까 해결책을 고민해야 했다. 이 회사에서 식사시간은 '술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름 간단한 정답을 찾았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도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를 하던 때였다. 공식적인 업무 시작시간은 보도자료가 쏟아지는 9시 30분 정도였는데 나는 8시가 조금 지나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엔 아주 웃픈 전설이 있는데, 우리 팀에 이슈와 단독 기사를 가장 많이 쓰는 바로 윗선배가 있었다. 입사하면서 목표가 '저 선배를 따라가면 좋겠다'였는데 그럴려면 부지런히 서둘러 그날의 이슈를 찾아야 했다. 보통 이 선배도 8시 전후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나도 여기에 맞추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출근 시간이 굳어졌다. 선배들은 "왜 이렇게 일찍부터 일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출근할 때 버스 시간 맞추다보니 회사 도착 시간이 그 즈음 된다"고 얼버무려 답을 하곤 했다.


어쨌든 선배들은 노력하는 내 모습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여럿 주셨다. 단독 발제, 인터뷰 등 후배가 출입하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사격을 해주신 것이다. 기자는 자신이 출입하는 분야의 '덕후'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덕분에 경험치가 모여 어떤 이슈에 대해 타 매체가 출고한 기사와 조금 다른 발제를 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었다. 이런 류의 민감한 기사들은 대개 소속사들의 전화를 받기 마련인데 선배들은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커버는 우리가 쳐줄게"라며 쫄지 말라고 다독여주셨다. 이 과정에서 조금 봐달라는 전화를 '부재중'으로 응수하는 요령이 생겼고 소속사 관계자들이 데스크들을 찾아와 밥을 먹는 날이 늘어나게 됐다. 매체력이 과거보다 조금 더 올라간 결과를 낳게된 셈이었다.


이후 선배들은 내게 술을 권하지 않으셨다. 화기애애한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라 빠지지는 않는데 데스크가 먼저 나서서 "얘는 술을 안마시니까 콜라 줘라"며 보호(?)를 해주셨다. 고등학교 선배셨던 국장도 식당을 고를 때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선정하는 배려를 보여주셨다. 술 마시지 않는 기자로 소문난 나는 우리 매체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출입처와의 약속에서 최초로 노포가 아닌 파스타를 메뉴로 선정하는 역사아닌 역사를 쓰기도 했다.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내 주장만을 펼치지 않았다. 가령 PD는 시청률로 역량을 나타내는 것처럼 일을 누구보다 성실해 무언가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후배에게 어떤 핀잔을 줄 수 있겠냔 말이다. 소임을 다했더니 얻게된 결과물이었다. 이건 잇단 이직을 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비슷한 상황을 직면하게 됐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귀한 지혜가 됐다.


혹 직장생활 가운데 타개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만났다면 그곳의 '에이스'가 되어보길 권면한다. 꼭 영업 직무에서 이달의 영업왕이 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맡은 직무, 분야에서 소구력 있는 자가 되면 나의 말과 행동이 큰 호소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너가 아닌 일개 직장인이 귀여운 월급을 받으면서 이번주를,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다음주를 살아내는 돌파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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