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메일함을 찾아오는 사람들

by Paul
Screen Shot 2022-01-18 at 12.28.49 AM.png 하루에도 수많은 제보 메일이 메일함에 쌓인다. Paul 제공

지난 2018년 정부 기자단으로 활동할 때다. 자신이 발제하는 기사뿐만 아니라 각 부처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해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평소 일반인이 갈 수 없는 구역과 학회 등을 갈 수 있는 터라 난 모든 행사를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법무부 주관 행사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세계 각국의 법무부 관계자들이 모여 인사이트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당시 청원 플랫폼 관련 이야기가 오간 바 있다. 우리나라 국민청원 시스템은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청원 플랫폼을 참고한 것인데 국내 실정에 맞게 변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이 청원 홈페이지는 많은 이가 찾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정부와 각 기관에 해결책을 마련해달라며 호소가 이어진다. 이중에는 국민적 관심과 공분이 일어 해결되거나 해결이 되고 있는 청원도 많다. 이런 사례를 보면 순기능으로 청원 플랫폼이 국내 잘 자리한 것 같아 내가 제도를 도입한 건 아니지만 뿌듯할 때도 많다. 하지만 문득 오늘만 놓고 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가 발생했을 텐데 반드시 주목해야 할 어떤 일화나 사건이 관심을 받지 못해 잊혀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연 많은 이가 선택한 또 하나의 방법은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의 사연은 썩 좋지 않은 내용이 9할을 이룬다. 사건을 해결해야 할 공동체, 기관, 심지어 경찰 등 수사 주체에서도 의지가 없어보여 너무나 낙심할 때 기사 밑에 적힌 기자의 이메일로 글자들을 써내려 간다. 물론 관련 취재 부서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니터링하지만 그 많은 이야기를 모두 쫓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린 기사 밑에 '바이라인'이라고 불리는 기자 이름과 이메일을 적어둔다. 제보자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를, 그리고 우리를 찾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사실 내 메일함을 보면 생전 처음보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내 안부를 묻는 글이 제일 많다. 그 다음으로는 나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안부까지 친절하게 물어보신다. 더 애정이 있으신 분들은 내가 왜 기자가 됐는지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새삼 난 관심과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있구나를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음을 느낀다라고나 할까. 어쨌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려 작성한 기사가 이 세상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고 그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다는 증거니까.


메일함을 넘기다 보면 이런 글들을 뒤로하고 정말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취재 요청을 하는 제보자들의 메일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N년차가 지나면 세상에 참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은 처음 그 글들을 읽었을 때 들고 지나간다. 감정이 매말랐다기보단(사실 맞지만) 우리에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어려운 이야기를 단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나에게 꺼낸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선행한다. 이후 짧은 취재를 통해 발제가 가능한지 파악하고, 데스크에게 보고하여 최종 취재를 시작한다. 이른바 기사'감'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데 절대 조회수나 파급력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라는 아주 강력한 플랫폼으로 다뤄야 하는 야이기인지, 이것을 통해 어떤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 다음 내 역할을 이렇다. 억울함을 알려야 한다면 아주 객관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는 똑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알린다. 필요하다면 당사자 인터뷰나 폐쇄회로(CC)TV 등을 입수해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덧붙인다. 만약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이 더디다면 무엇이 선행돼야 하는지 따끔한 회초리(?)도 든다. 이같은 기사의 다음 기사는 '매체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문구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는 걸 알려준다. 아주 심한 고질적인 무언가를 도려내야 할 때, 기사는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기자였던 아버지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한 지방 부처 출입 당시 본인이 기사만 쓰면 공무원들 목이 날아갔다고 한다.


사실 일개 기자가 기사 하나 썼다고 사회가 크게 변하겠는가. 그렇지만 어떠한 기사에 공감하는 다른 기자들의 기사가 모여 여론이 되고, 이 여론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대책 등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되어지는 경우를 적잖게 봤다. 어느날 뿌린 촉매제가 사실은 아주 작고 작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들인 셈이다. 물을 계속 흘려보내면 단단한 바위도 쪼갤 수 있다는데, 그래서 일선 현장에서 기자들이 오늘도 커피를 4잔씩이나 마셔가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은 어제가 됐고 내일이었던 오늘 또다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출근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메일함에 메일이 잔뜩 쌓였고 그 가운데 고통을 호소하는 제보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실 완전하지 않은 내 청춘을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남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 매일매일 듣고 있으면 어떤 날에는 퇴근을 할 때 큰 한숨이 쉬어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랄까.


그럼에도 내가 책무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기자'라서 아니겠는가.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야 하는 직업, 이게 내가 하는 일의 사전적 의미란다. 그동안의 글들을 통해 펜대를 허투루 굴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만큼 뻔한 글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책임감을 가져보자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귀농하는 선배들 뒤를 따라가더라도 족적은 이왕이면 깊게 남겨야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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