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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19. 2022

이번엔 원없이 연구할 수 있나요?

한국 대학의 수강신청은 티켓팅이란 말에 호주 친구들은 놀랐다. 공부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면 작년 입시 성적으로 다른 대학도 갈 수 있기 때문. Paul 제공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안 후보는 현행 과학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연구비는 굉장히 많이 썼는데 그게 노벨상을 받을만한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했고 산업화도 하지 못했다"며 "왜 그런가 하면 성공률이 너무 높아서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우리나라의 연구 성공 확률은 98%로 집계됐는데 이 말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 있는 연구만 한다는 것이다"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이미 존재한 기술이니 산업화에 성공할리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이유로 안 후보는 연구비 책정 행태를 꼬집었다. 연구에 성공하면 연구비를 많이 주고 반면 실패하거나 결과가 썩 좋지 못하면 연구비를 감액한다는 것이다. 이 토론회를 시청하는데 문득 지난 2019년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한 대기업 CSV 신사업의 홍보를 맡고 있을 때였다. 존슨앤드존슨의 실험실창업을 모토로 삼아 국내 다양한 과학기술 아이디어를 발굴해 현 산업과의 접목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인사이트가 필요했고 우리 팀은 실험실창업 관련 국내 저명한 과학자들을 잇따라 만난 바 있다.


그러던 어느날, 저 멀리 포항에서 올라온 한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서울역 근처에서 조촐한 점심을 먹은 뒤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실험실창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별안간 이 교수는 한숨을 토로했다. 그는 IBS(기초과학연구원)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하고 싶은 연구를 원없이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하고 과학기술에 발전을 가져다줄 연구는 숱한 실패가 필요한 장기 연구인데 분기별로 연구비를 책정할 때 성공 여부를 따지니 울며 겨자먹기로 이른바 '돈 되는 연구'만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능한 과학자들은 이미 국외로 이탈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IBS는 국내 노벨상 수상을 유력하게 만들기 위해 지난 2011년 설립됐다. 이 포부를 실현하려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연구비 책정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녹록치 않게 일어나자 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사를 찾아보니 이탈률은 심각할 만큼 불어나고 있었다.


대전을 찾아서도 비슷한 증언(?)은 이어졌다. 군 동기가 재학 중인 학교를 방문했는데 그는 순수 연구에 어려움을 토로하며 제2의 대안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자친구는 벌써 의전원에 재학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과학분야의 현실을 아주 여과없이 나타내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해당 CSV 사업 론칭을 위해 진행한 컨퍼런스 참석 차 울산에서 올라온 한 외국인 교수는 후배들과 함께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한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과정이 즐겁다며 "의미있는 실험실창업으로 다양한 선례가 나왔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렇게 소수라도 근간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아직은 희망이 있는듯 했다.


오늘도 유력 대선후보들은 어느 지역에 대규모 과학기술단지와 랩 허브를 조성하고 R&D를 구축하겠다는 등 알맹이가 빠진 공약들을 약속했다. 과학계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일선에서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고 쾌쾌한 실험실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연구자들은 오죽할까.


차기 정부에서 과학이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진심이라면 학부 2년을 과학분야에 짧게 몸담았던 자가 감히 제언을 건넨다.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연구를 어떻게 지켜보며 지원해야할지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 답을 찾아봐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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