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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05. 2022

하고픈 말로 채운 글쟁이의 해우소

브런치 조회수는 오르는데 유입경로를 일 수 없어 답답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누리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Paul 제공

지난 2018년 카카오 사옥을 방문해 브런치 담당자를 만난 바 있다. 모든 내용을 기억하긴 어렵지만 당시 설명을 들었던 브런치의 목표가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래도 국내 굴지의 IT기업의 사업 부서 방향성이라면 꽤 거창할 것 같은데 브런치는 그러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도 자신이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이 그들이 일하는 이유란다. 이후 브런치 작가들의 글이 책으로 엮인다면 브런치는 지속가능성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팀원들은 작가 의뢰가 들어오면 글들을 모두 읽어본다고 했다.


나는 카카오를 방문할 즈음에 여러 곳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터라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거대 기업에서 론칭한 한개의 서비스구나 생각했을 뿐. 약 1년이 지나 글쓰기란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브런치가 떠올랐었다. 과거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트렌드가 글에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곳인 브런치로 옮겨가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선 글을 몇개 올려야 했는데 난 이 조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름 수요자들에게 글을 공급하고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형식적인 글들을 잇따라 올린 뒤 운영계획서에 뜬구름이 잔뜩 껴있는 말을 적었었다. 이게 뭐라고 작가 승인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떨리는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결과는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내게 목욕값을 준 브런치를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휴대전화에 내려받은 애플리케이션도 발표 직후 삭제했었다. 개선할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냥 나를 떨어뜨린 브런치가 미웠나보다. 그렇게 한동안 멀리한 브런치가 눈에 다시 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쯤이다.


글을 쓰는 직업 가운데 영향력을 잇단 전파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 게 기자였다. 하지만 내 족적을 돌아보면 누군가를 어렵게 만들거나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잘못된 부분에 대해 날카로운 펜대를 들이미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일을 할수록 내가 들춰내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쌓이며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은 계속 됐다. 꼭 알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알게 되니 대통령이 비밀 준수 서약서를 작성한다는데 기자 역시 그 무게 못지 않은 자물쇠를 갖고 살아가는구나 했다.


이 직업을 가진 뒤 얻게 된 또 하나의 병은 '화'다. 출입처나 취재원과의 끝나지 않는 입씨름이 원인이다. 물론 기사가 잘 써지지 않는데 '언제쯤 출고 될까'를 외치는 데스크도 적지 않은 몫을 제공하고 있긴 하다. 이 과정을 거쳐 내가 써내려가는 글은 전부 남의 이야기다.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이 직업의 본질이니 그렇다. 머리와 마음에 감정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이미 좋지 않은 모양새로 적재된 감정들이 한계치를 넘은듯 했다. 이는 선후배들을 만나면 아무런 말 없이 커피를 한번에 마시거나 대화의 90%가 한숨이나 욕을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만들게 됐다. 그래서 퇴직한 선배들이 '무'의 상징인 귀농을 선언하는 것인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점에서 눈에 들어온 브런치는 비교적 쉽게 입성하게 됐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목표'가 이전보다 뚜렷하게 보였나보다. 기사를 쓸 때보다는 정리되지 않은, 아니 정확히는 정리하고 싶지도 않은 글을 손길이 가는대로 쓰고 싶었다. 어쨌든 기자란 직업을 가운데 두고 곁다리로 펼쳐가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으니 브런치의 수많은 페이지 가운데 한장을 담당해도 된다고 브런치 팀원들이 결론을 내려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어디서 내 글이 공유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작성한 글도 2만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에서 작성하는 글들은 어쨌든 중요한 이야기가 아닌 건 아니니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적혀진 글들은 어쩌면 모르고 지나쳐도 될, 지구에 살고 있는 수십억 인구의 이야기 중 작고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만여명의 사람들이 두서없는 글을 읽어준 것에 브런치 계정을 오픈할 때 먹었던 마음과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했다고 감히 자부해본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한 문예창작과 선후배들은 대개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택한다. 이건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오늘날 취업이 잘되는 일부 공대를 제외한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란 직업으로 살아가는 건 큰 감사다.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을 가지고 글을 써내려가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난 오늘 새벽까지도 취업 사이트를 부지런히 뒤져봤다. 만족할 줄 모르는건지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은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삶을 살아감이 맞는지 스멀스멀 찾아오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이겨내고 싶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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