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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12. 2022

선배, 전화 그리고 기자

선배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울리면 1초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Paul 제공

지난해 3월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배우 진기주가 짧은 수습기자 생활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힘들었던 일화 중 하나를 떠올렸는데 바로 데스크와의 전화였다. 진기주는 사스마리(경찰 출입)를 할 때라 집을 들어가지 못했다며 그 시기를 회상했다. 어쩌다 들어간 집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별안간 휴대전화로 전화가 울렸다고 했다. 바로 전화를 받지 못했던 그는 벨소리가 몇번이나 울린 뒤에야 수신 버튼을 눌렀는데 수화기 너머로 갖은 험한 말이 들렸다고 했다. 취재를 못해서가 아닌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게 데스크가 화가 난 이유였다.


설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겠냐 싶겠지만 드라마 픽션이 아닌 팩트다. 흔히 직장인의 짬빠가 차면 괜찮지 않겠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에게서 선배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건 N년차라도 죄악에 속한다. 글쎄 가만히 곱씹어 보면 누군가 이같은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취재를 할 때 취재원 혹은 출입처에서 전화를 받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기사를 출고하지 못하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일종의 문화와도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최근 저녁 당직을 하며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할 때 질병관리청 혹은 의사 등 의료 전문가들의 멘트를 담아야 했다. 다행히도 오후 6시를 넘기면 각종 브리핑이나 진료가 없을 시간이다. 이에 나는 평소보다 수월하게 멘트를 따 기사에 넣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양반인 경우다. 다른 분야의 취재는 9~18시는 물론이고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기사에 필요한 답을 얻지 못할 때가 많다. 대개 예민한 취재의 경우 담당자들이 '부재중'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 이때부터 기나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전화를 여러번 하고 문자도 남겨놓고. 이것 마저도 어려워지면 그 분야에서 엇비슷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럼 휴대전화 수발신함 목록은 단 하루 만에 어제 기록이 사라지게 된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참 좋겠지만 기사는 시의성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시의성은 남들보다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단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꼭 단독을 위해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다. 어쨌든 현장에서 부리나케 뛰어다니고 있는데 "기사 아직인가"란 짧은 문자가 내게로 날라오는 걸 막으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저 말 다음엔 "타 매체는 벌써 나왔는데 우린 뭐하고 있지"란 매우 무미건조한 불호령이 따라온다. 단독은 고사하고 타 매체 취재력 만큼만이라도 해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분명히 본인도 수습을 거쳐 주니어, 차장 등을 거쳤을 텐데 그 자리에 올라가면 과거 취재를 어떻게 했는지 까먹는건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시의성을 위해 우리는 평균 25분 단위로 누군가를 닦달하는 악역을 더 잘 소화하게 된다.


연락을 했는데 어느 세월에 회신이 올지 불투명한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직이어서 그런지 취재는 물론이고 업무와 관련한(뿐만 아니라 업무 외 시간에도) 연락을 선배가 주면 경이로운 광경이 포착된다. 가령 팀 단톡방에 전언이나 지시가 남겨지면 (과장을 더하여)0.5초 만에 답글이 줄지어 달린다. 전화도 (이번엔 과장이 아니다)벨소리가 평균 3회가 울리기 전 받는다. 이후 '넵'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등의 말들을 우리는 내뱉는다. '제가 지금은...'이란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기자를 하기 싫다는 말과도 같다.


이 과정을 매일 거치면 일상생활을 할 때 여파가 심하게 나타난다. 나만 성격 파탄자가 아닐까 싶어 우리 회사 선후배들에게 물어봤더니 전우들 역시 비슷한 고백들을 해줬다. 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 연락이 곧바로 되지 않으면 답답하지만 취재가 아니기에 인내를 발휘한단다. 물건 등을 위해 쇼핑몰 고객센터와 통화를 하게 되면 회신을 달라고 하지 않고 차라리 연결 상태에서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고 했다. 먄약 홈페이지에 게재된 연락처가 불통으로 돌려놨다면 결국엔 연결 가능한 번호를 찾아내 조취를 취하기도 한다고. 당장 답을 얻지 못하면 발생하는 조급함과 강박의 일종이다.


어제도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선배도 나도 정말 힘들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내 언론인 카테고리에서도 취재를 하다가 너무 지쳐 화장실에 들어가 수시간을 울었다는 글도 있었다. 하루에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을 두고 왜 발생했는지, 어떤 원인과 결과가 있는지, 향후 대비책 등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내야 하는 삶이 지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택한 직업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책무임을 알고 있다. 다만 일에서 따라오는 갖가지 직업병이 기자가 아닌 시간도 지배하고 있으니 대체 무얼 추구하며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남들 만큼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던 시간들이 어느새 남들보다 더 좋고 높은 목적지를 가져야 한다는 욕심으로 바뀌어 이같은 부작용이 나오는 것 아닐까 자평을 해본다. 이미 최신형 휴대전화가 손 안에 있는데 다음해 출시될 시리즈를 찾아보고 있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에 불과하지 않은가. 일과 삶이 절대 분리되는 건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데이오프를 보내면 어찌할 바 모르고 결국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오늘의 나를 보면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도 주저리 풀어내는 글을 통해 내려놓는 시늉이라도 해봤음에 내 손으로 닿지도 않는 등을 토닥여준다. 다음주에는 적당히 닦달하는 취재를 해야지 하는 말도 안되는 다짐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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