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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19. 2022

결단하면 달라질 텐데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인데 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한 친구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Paul 제공

지난 2016년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영어가 필요한 순간이 딱히 없었다. 국외기관을 초청해 가지는 정부 행사나 외국인 교수가 포함된 실험실 신사업을 진행하는 기업 프로젝트 등에 참여해 요긴하게 썼지만 거기까지였다. 졸업을 위해서는 학부 시절 끄적여온 작품들을 모아 논문으로 제출하면 됐고 영어시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취업 과정을 거치면서도 난 토익이나 토플을 보지 않았다. 채용공고에 있지 않았을 뿐더러 지난 2020년 이후 어떤 기업에 지원할 땐 경력직이라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외신 기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외신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여기에 덜컥 겁을 낼 필요는 없으나 기사에 적혀있는 익숙하게 써온 단어들의 뜻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쓰기도 문제였다. 얼마 전 내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 과거 작성한 게시글을 쭉 올려봤다. 그러다 보인 영어 글들에 '내가 지금도 이만큼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전에도 대단한 영어 실력자는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호주 친구들을 만나면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며 즐겁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신나게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참 운이 좋게도 회사 복리후생 가운데 영어전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요일 만큼 기간을 정해 신청하면 되고 결제는 작고 귀여운 복지포인트에서 빠진다. 신청 버튼만 누르면 녹슬었던 영어에 조금이나마 기름칠을 할 수 있었다. 꼭 특파원이 아니더라도 외국 관련 취재를 할 때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도움이 되는 그런 소비였다. 그래서 내가 결제를 했냐고? 최근 몇일간 영어전화 프로그램 신청서를 다 작성해 신청만 누르면 되는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할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딱히 신청을 피할 변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남들은 돈주고 학원까지 다니면서 배우는 영어를 공짜로 할 수 있는 환경인데 굳이 하지 않느냐'며 나에게 쓴 핀잔을 주셨다. 이 혼남을 뒤로하고 지금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난 영양가 없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고민의 실체가 없으면서도 말이다. 흔히 생각은 결제를 늦출 뿐이라고 하는데 딱 내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소비 중 현명한 것으로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텐데.


문득 몇달전 친구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가 생각났다. 화난 얼굴로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내 옆에서 이 친구는 일본어 책을 펴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웬 일본어냐고 묻자 그냥 막연하게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려면 언어가 필수니 조금씩 공부하고 있단다. 공무원인 친구는 당시 코로나19로 매일 야근을 했다. 모처럼 생긴 휴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게 유튜브를 시청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텐데 굳이 사서 고생을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나중에 준비하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기는 그의 결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난 결단의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빠른 졸업을 바랬던 교수님의 강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쿨하게 휴학을 한 뒤 언론사 인턴을 했다. 물론 재수에 군대까지 다녀온 내게 남들보다 늦은 레이스를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를 계기로 기자의 꿈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4학년을 학생의 모습으로만 다닐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강의가 잇따르며 차라리 취업을 해야겠다 싶어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려봤다. 그 결과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조기 취업의 영예를 누렸다. 경력직 공고를 줄지어 마주했을 때 '아직은 아니야'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머슴일도 대감집에서 하라고 더 큰 기회를 얻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으로 점프를 시도했다. 이번주에 만난 타사 후배에게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으니 내 시도가 무모하진 않은 셈이었다.


이같은 경험이 있음에도 주저하는 나를 스스로 타박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굳어진 자세 교정을 위해 집 주변 필라테스 학원을 검색까지 마치고도 지인들을 만나면 '해보고 싶다'에서 끝나는 근래의 내가 또다른 결단 앞에 망설이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만천하에 게을러진 나를 알렸으니 다음주에는 어떨까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취재가 늦게 끝나 시간이 없어서 혹은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쉼을 택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같은 변명을 재생산하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정류장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타야 할 버스를 놓치면 '조금 더 서두를걸' 후회를 토로하지 않나. 다음 버스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내가 타지 못한 게 막차라면 그날의 모든 것에서 결여 외엔 별다른 무언가를 얻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결단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회를 접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삶 저변이 훨씬 다채로워진다. 숱하게 쌓아온 후회에 다른 후회 하나 얹는다고 하여 티 나지 않겠지만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내 삶은 단 한 번 뿐인데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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