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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28. 2022

그러라고 모아놓은 사람들

분명 쉬는날인데 포털에 들어가 뉴스를 체크하는 나를 볼 때면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Paul 제공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섭렵하게 됐다. 티빙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등 TV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가입해 새로운 콘텐츠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너무 실시간(?)으로 봐서 그런지 오늘 따라 볼 콘텐츠가 없었다. 이에 미루고 미뤘던 '소년심판'을 시청하게 됐다.


일을 하면서 하도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라이트한 콘텐츠를 챙겨보는 편인데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터라 대화에 끼기 위해 시작을 했다. 2화로 접어들었을 무렵 눈길을 끄는 대사가 있었다. 출세를 해보려는 강원중(이성민 분)이 시끄러운 재판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자 심은석(김혜수 분)은 판사의 역할을 나열하며 '이러라고 우리를 모아놓은 것 아니냐'고 소리친다.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국가가 손에 판결봉을 쥐어줬다는 의미다.


문득 스포츠지에서 연예부를 출입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대개 홍보팀의 역할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기업의 리스크 관리일 것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이른바 '관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 엔터 대기업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점심시간이 되면 홍보팀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쭉 빠진다고 한다. 모두 기자를 만나러 간 것이다. 식사란 으레 거치는 '상징적 일'에 불과하지만 잠재적으로 닥칠지 모르는 리스크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어쨌든 앞면이라도 트면 혹시나 모를 일이 발생했을 때 사측 차원에서 컨트롤이 잘 되지 않겠는가. 좋은 게 좋다고 이 깊은 뜻을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도 데스크는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항상 "좋은 건 마음껏 써주는 대신 잘못하면 봐주지 말고 조져라"고 말씀하셨다.


어느날 한 사건이 터졌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의 중심에 선 연예인의 소속사는 발빠르게 먼저 기자들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에게도 전화가 왔고 데스크에게도 전화가 왔다. 일개 기자가 아닌 데스크에게도 전화를 했다는 건 평소 관계를 강조하며 '잘 봐달라'는 의미다. 사실 데스크급이면 추후 '영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사내 인사이동도 그렇지만 기업 홍보팀으로의 이직을 고려하면 큰 사건 앞에서 몇가지 셈을 해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데스크는 우리를 불러모아 "조져라"는 딱 한마디를 하셨다.


내가 선배들을 멋있다 생각하는 부분이 여기 있었다. 술을 참 좋아해 점심부터 회사 근처 가장 맛있는 식당에서 소주 몇병을 깐 뒤 오후 근무를 당연히 제쳤던 선배, 신발이 너무 좋아서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신상이 나올 때마다 얼마 되지 않는 기자 월급을 탈탈 터는 선배, 늘 허허허 너스레를 떨면서 본인이 좋아하지 않아도 딸이 좋아한다고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 같이 응원봉을 흔드는 선배. 이 선배들이 데스크의 말에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어디서 찾았는지 피해자를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사건과 관계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추가 증언을 얻기 시작했다. 온라인 반응도 정리했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 기사화했다. 하여튼 끈질기게 취재를 했고 이 과정에서 우린 몇건의 단독을 쓰기도 했다. 절대 봐주지 않는 우리를 원망이라도 하듯 소속사는 사실관계 확인 요구에 수차례 응하지 않았다. 결국 잘못이 세상에 여과없이 드러나며 그 아티스트는 연예계를 잠정 은퇴했다.


연예부를 출입하며 이같은 일을 종종 했다. 이후 다른 부서로 옮겨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난 TV를 틀 때마다 사실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연예계에서 사라진 스타도 있지만 얼마간의 자숙시간을 거친 뒤 다시 모습을 나타낸 얼굴을 보면 그렇다. 한번은 유쾌하지 않은 기사를 잇따라 출고한 내게 당사자를 의전하고 있는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기자님, ㅇㅇㅇ가 너무 힘들어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날 전화를 받고 퇴근하고 집을 갈때까지 멍을 하염없이 때리기도 했다. 기자라면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이를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다. 다만 N년차 기자로서 얻은 답은 뭘까.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난 당시 구체적 상황, 이 사건 용의자들의 추가 범행과 검찰 송치, 그리고 관련기관의 추가 처분 등을 끝까지 기사화했다. 피해자 가족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내가 한 약속은 한가지다. 바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기사를 쓰겠다"였다. 이 앞에 생략한 기자들의 언어는 '단독만 받아가지 않고'다. 이게 바로 내가 갖게된 답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다음을 위해 달라지려는 단 한명'이란 믿음과 '그러려고 나에게 펜대를 쥐어준 것 아닌가'란 책무를 품고 일하는 것 말이다.


잘못을 한 연예인이 업계를 떠났다고 해서, 어떤 사건의 가해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게 됐다고 해서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또 내 기사 하나로 사회에 얼룩덜룩해진 부분들이 시원하게 도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기자는 적어도 시작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을 '원래 그래'라며 고개를 가로저을 때 '그렇지 않아'라며 앞장 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기자 아니겠는가. 이에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노트북을 여는 게 두려워도, 취재에 진척이 없어 한숨을 퍽퍽 쉬어도 키보드를 부지런히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모두가 똑같지 않겠으나 나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내가 휘두른 펜대가 마침표를 찍을 땐 그래도 이전과 다른 무언가를 마주할 기회가 생겨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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