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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06. 2022

꿀리지 않고 충분히 괜찮아

좋은 직장의 기준이 '알아주는'은 아닌데 어느새 이 기준에 스며든 날 발견하곤 한다. Paul 제공

미국행을 택한 오랜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다. 방학  곧바로 전화를 받던 교사 친구는 개학으로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번째 친구 A에게 전화를 걸었고 운전 중에 받은 그는 오랜 만에 모이는 이유를 듣자 "결국 그만뒀네?"라며 아쉬움을 표출했다. 시간이 한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만날  있는 날짜를 빠르게 곱씹던  친구는 대뜸 "근데  자리 가면 내가 꿀리겠네. 한놈은 선생님이고 한놈은 기자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 그런 말을 하냐" 답을 하려던 순간 친구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고 더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조만간 얼굴을 보자는 빠른 맺음을 하고서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간을 함께한 얼마 전 공무원을 때려친 친구와 중학교 3학년 시절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독서실을 같이 다닌 바 있다. 이 시기에 2명의 친구가 더 붙어 총 4명이서 독서실 생활을 했다. 한명은 지금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꿀리겠다"를 말한 A다. 내 기억을 되짚어보기로 이 4명이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당시엔 그렇게 끈끈하지 않았었다.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한집 두집 건너 살고 있으니 따로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중3때 한데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는 조금 했고 틈만 나면 나가 놀았다.


난세에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했다. 교사인 친구는 우리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고 우리와 어울린 뒤 남은 시간을 선용했다. 그 결과 비평준화였던 당시 지역에서 2순위에 해당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공무원인 친구는 집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한 지 1년 만에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 역시 기숙사가 있는 타 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동네를 떠났다. A는 중학교를 다니며 자유로운 영혼에 속했었고 이 여파로 내신이 조금 부족해 동네 근처에 신설된 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이렇다 할 연락을 주고 받지 못했다.


A를 다시 만난 건 동네 헬스장이었다. 근황을 물으니 대학 졸업을 앞두고 토스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음처럼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래도 학원을 꾸준히 다니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때 A의 눈빛은 조금 뜻밖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과거 학창시절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화는 아주 짧았지만 A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한지도 벌써 수년째라고 하니 이 끈기면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SNS를 통해 그의 근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원하는 토스 점수를 마침내 얻어낸 소식이었다.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의지에 달렸다고 하지 않나. 친구들의 삶을 팔로업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난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주변을 잠시 잊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어느새 내 주위엔 일로써 형성된 사람들 뿐이었다. 넋두리가 직장인의 가장 큰 낙인데 동료에게 털어놓기엔 한계가 존재했다. 문득 아버지가 고향에만 내려가면 왜 그렇게 친구들을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마음이 들었던 어느날 저녁, 곧장 A에게 연락을 해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왜 이 친구가 떠올랐을까 지금 생각을 되뇌여봐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지난날의 이야기가 제일 궁금했던 친구였다.


꿈을 쫓는답시고 늦은 걸음을 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3명과 다르게 A는 보편적인 삶의 단계 가운데 딱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활기찬 성격에 잘 맞는 영업직군을 택해 우리 중 가장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연차가 꽤 쌓인 덕분인지 나와 만났던 날 괜찮은 옵션들이 들어간 차를 몰고 왔다. 여자친구가 있는 그는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이를 먹었다고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는데 여기서 계속 살아도 좋으니 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주고받으니 '척'하는 시기를 지나 찐 어른이 됐다는 게 실감나기도 했다. 어깨가 키보드보다 넓어 아직도 운동을 하냐고 물으니 A는 "출근하기 전 매일 새벽 헬스장에 간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 친구의 끈기가 참 놀라웠다.


A가 종종 말했던 것처럼 4명 가운데 A의 모습이 가장 '평범'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한끝 차이지만 세상은 특별한 기준을 세워 볼품의 있고 없고를 결정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전해들은 A의 대학생활은 매우 치열했다. 교수에게 찾아가 일자리를 끊임없이 찾았고 더 나은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 영어학원의 문을 매일 두드렸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가 합병 등 크고 작은 이슈를 거쳤으나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일하는 분야에선 전문가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으로 고객을 상대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 충분히 박수 받을 과정을 뒤로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A였다. 아직도 헬스장에서 새벽을 밝히고 있다니 나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성실함이란 충분히 괜찮은 무기를 그는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꿀리는'이 어딨겠는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알아주는 직업을 가지려 아등바등 산 내가 오히려 특별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창밖을 내다 보면 저 아래 모습은 다 똑같은 점인데 중요한 삶의 방향성 없이 살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소리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교 앞 카페를 지나다보면 무언가에 몰두한 대학생들에 마음이 몽글해진다. 물론 중고등학생들을 봐도 같은 마음이 든다. 앞서 언급해왔던 고민들 없이 저 시기를 지나와서 그런가보다.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꼭 다 똑같은 한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후회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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