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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12. 2022

만회할 기회를 달라는 선배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이 말은 굴레에서 매몰된다는 뜻이다. Paul 제공

대선은 출입하는 정치부 뿐만 아니라 사회, 정책, 국제부 등 모든 부서에 영향을 줬다. 단일화와 투표 같은 이슈는 정치부 출입 소관이 맞지만 이를 둘러싼 여파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퍼지기 때문이다. 이에 나를 비롯한 선후배들은 도대체 어디에 박혀있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을 새 없었고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로 '생사' 정도 확인하면 다행이라 여겼다.


지난 9일까지의 폭풍같던 업무를 뒤로하고 10일 당직을 위해 회사로 들어갔다. 대선 직후 민감한 이슈의 등장으로 스케줄 근무가 이상하게 꼬여 혼자 외롭게 보도국에 들어 앉아 있었다. 노트북이랑 커피 한잔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내가 불쌍했는지 다른 부서 데스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카톡을 쓱 보내왔다. '오늘 점심 약속 없으면 같이 하자'라고 말이다.


이 선배와 업무를 한 적이 사실 별로 없다. 내가 이직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타 부서로 발령받아 가셨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모를 애틋한 마음이 있는 이유는 나를 뽑아준 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채용을 한 것인데 이 계획이 잠정 중단됐으니 선배 역시 아쉬움을 켜켜이 쌓고 있었던 터였다. 보도국에서 오고 가며 드리는 인사 속 이 아쉬움들이 가득 담겼음을 우린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리고 이 감정을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넘쳤을 때 이같은 만남이 성사돼 회포를 잔뜩 풀곤 한다.


데스크 정도의 선배와 밥을 먹으러 가면 메뉴의 범주는 딱 한가지다. 바로 국물이 있는 한식 위주다. 이유는 꽤 간단하다. 술 몇 병을 찐하게 기울이며 한탄을 내려놔야 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방금 언급한 메뉴를 판매하는 음식점들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딱 한잔을 받아두고 선배의 잔이 비지 않도록 열심히 보폭을 맞춘다. 이건 나이가 많은 선배를 위한 대우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모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특별히 데스크란 자리는 그보다 더 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으니까 후배들이 해줄 수 있는 위로 일종의 비스무리한 것이다. 이날은 나주에서 알아준다는 곰탕이 식탁에 올랐고 그렇게 점심식사가 시작됐다.


데스크는 어떻게 보면 언론사에서 기자들의 종착점 같기도 하다. 물론 국장까지 가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흔히 전관예우를 해주는 변호사들은 공직에서 최소 부장 이상을 달고 퇴사를 한 이들이다. 전관예우는 재판을 할 때 막대한 영향력을 주기 때문에 거대 로펌들은 이들이 검찰청이나 법원에 사표를 낸 직후 스카웃 제의를 발빠르게 한다. 기자도 엇비슷한데, 퇴사하기 전 현업에 계속 남고 싶다면 대개 선임기자를 하는데 현장에서는 'ㅇㅇ까지 해봤다'는 게 훈장으로 여겨져 출입 안팎으로 영향력을 잇단 발휘할 수 있다.


모두가 꿈꾸는 자리에 있는 선배지만 그는 그다지 재미가 있지 않다고 했다. 아침 8시쯤 출근해 오전 회의를 위한 자료를 준비하고 점심을 먹으면 오후 회의를 위해 리서치를 한다고 했다. 물론 중간중간엔 부서 기자들이 올린 발제를 데스킹한다. 기사가 출고되는 데 휴무가 있는 것 보았는가. 당연히 토, 일 등 공휴일은 반납하고 7일 내내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평범한 상황일 때 이렇게 살 수 있다. 만약 단독 시가라도 나가는 날엔 그 주는 물론이고 어떠한 결론으로 수습이 될 때까지 24시간 매달려야 했다. 유력매체일수록 기사만 나가고 땡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들이닥치는 갖가지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부서에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선배가 오늘도 어김없이 진한 곰탕에 맥주가 아닌 소주를 택한 이유였다.


후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선배가 없으니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듣기 좋으라는 아부성 발언에 불과하겠으나 진짜였다. 나를 포함한 선배들은 매일매일 힘듦을 토로하고 있었다. '까라면 까야지'란 말이 군대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는 이 언론사 조직 가운데 일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계속됐다. 데스크가 생각하기에 써야 할 기사들이 공유되며 취재를 기반으로 한 발제가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보면 작가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하지 않는가. 열심을 담지 못하는 기사는 '처리'되기 마련이고 하루를 파할 때 적잖은 허탈감을 준다. 세상의 이야기를 최전선에서 엿들어 모종의 해답을 찾아나서는 일을 하는 이 직업의 본질을 외면해야 하니 어떻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급기야 이직을 언급하는 선배들이 많아졌다. 나도 이 마음을 자주 먹게 됐는데 참 서글펐다. 아무리 채용공고를 뒤져도 기자란 직업에서 오는 쾌감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는데 이탈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랬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오지 않겠나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당분간은 이어질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우린 큰 낙담을 토로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선배가 대뜸 자신에게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분명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이탈을 속으로 삼키고 믿어달라고 했다. 뜻밖에 터져나온 선배의 진심이었다.


선배 말에 따르면 나와 함께 이직해온 2명의 서류심사를 할 때 고개를 갸우뚱했단다. 이전 매체도 좋은데 당장에 척박한 길을 가야하는 분야를 왜 오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지원자들 가운데 가장 뽑고 싶은 후배였고 기회가 닿으면 함께 일하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결과적으로 합류하게 됐지만 타 부서 발령으로 조직이 찢어지면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장은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다하고 있단다. 선배는 "취재원과 접촉하는 게 매번 쉽지 않은데 같은 기사라도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취재를 해 작성한 기사를 보면 내가 다 뿌듯하다"고 했다. 남자 선배가 남자 후배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2시간이 넘는 점심식사 자리를 파하고 보도국으로 돌아와 입사 동기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역시 선배다"는 답이 잇단 돌아왔다. 이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는 다른 선배들의 말이 새삼 더 와닿는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나 역시 한참 뒤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한 경쟁하는 이 조직에서 후배가 현업에 남아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선배의 농도 짙은 위로가 벗어나기 위해 조급하게 해결책을 찾아 나서려는 내게 일종의 안정제를 준 것이다.


지난 설 명절 선배에게 인사 차 보낸 톡에 돌아온 답변이 떠올랐다. 선배는 "이직 과정을 모두 지켜본사람이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이미 많은 걸 갖췄고 그 능력을 여기서 더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순간도 오겠지만 잘 버텨달라"고 부탁하셨다. 점심식사에서 받은 위로를 더 받고 싶었던 걸까. 퇴근하며 오늘 식사 자리가 감사하다는 문자를 선배에게 보냈다. 그러자 선배는 단 2분 만에 이같은 답을 보내왔다. "별말씀을. 여전히 생소한 게 많을테니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길"이라고. 선배는 지친 하루를 보낸 후배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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