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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19. 2022

부모님 전용 해외여행 가이드

매일 아버지와 산책을 했던 베트남의 한적했던 아침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Paul 제공

아버지는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등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신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회사 동료들과 다녀온 유럽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아버지는 잘 아는 유럽의 관광지들이 나올 때면 '내가 저기를 갔었는데'라며 당시 일화를 떠올리곤 하신다. 몇번이고 계속해서 봤지만 저녁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시면 꼭 이 프로그램들을 틀어놓으신다. 내가 잘 모르는, 봐도봐도 새로운 무언가가 있는 걸까.


유튜브 세계를 잘 모르시는 아버지께 얼마 전 유럽 위주로 세계여행을 다니는 유튜브 채널들을 소개시켜 드렸다. 그랬더니 이젠 휴대전화를 붙들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없는지 살피시는 모습이 늘어가고 있다. 최근엔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유튜브 채널까지 확장하셨는데, 글을 쓰는 지금도 식탁에 잠자코 앉아 영상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니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가 유럽여행 후 다시 해외를 방문한 건 지난 2018년 1월이다. 동생의 입시를 끝마친 뒤였는데 어머니의 여권을 사용하는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내가 해외를 처음 나간 게 지난 2010년 고등학생 무렵이었다. 당시엔 '갈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거다' 정도의 생각 뿐이었고 2018년 가족 여행 때도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50살이 넘도록 해외여행 한 번 나가지 않으셨다니 부모의 헌신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맞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여행의 목적은 평소와 많이 달라진다. 그 장소의 랜드마크를 보기 보단 쉴 수 있는 곳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물론 이동수단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젊은이들의 뚜벅이여행 스타일을 적용할 수 없지 않은가. 대중교통과 택시 등을 적절하게 분배해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내가 가이드가 되는 과정은 꽤나 민주적으로 이뤄졌다. 이 업무들을 이제 막 입시를 마친 동생에게 맡길 순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난 2017년까지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한답시고 외국물을 잔뜩 머금은 내가 좀 더 발빠르게 준비할 수 있겠다고 부모님도 판단하셨던 모양이다.


첫 여행인 만큼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로 가는 게 좋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가장 가까운 일본을 방문하게 됐다. 여러 일정을 방문하던 중 시간이 남게 됐던 어느날, 부모님께선 갑자기 온천을 가고 싶다 하셨다. 이왕 온김에 더 좋은 온천으로 모시고자 머물고 있던 호텔에 전화를 걸어 주변 온천을 추천받게 됐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호텔 직원과 내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영상으로 남기셨더란다. 그걸 이모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공유하시며 아들 키워 편하게 여행했다고 자랑을 하셨다. 본인은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싶었으나 이게 부모님의 큰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2년 뒤인 2020년 초 가족과 베트남으로 두번째 해외여행을 떠난 바 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베트남에 머무는 4박 5일 동안 매일 아침 아버지와 산책을 나갔다. 전날 이곳저곳을 다니면 사실 아침에 부지런을 떨기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제 또 다시 베트남을 올지 모르기에 아버지에게 다양한 경험을 남겨드리고 싶었다. 호텔 앞을 산책하며 현지인들이 일상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가정집은 어떤지 면면히 살폈다. 최근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베트남을 접할 때면 아버지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설명을 하시는데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베트남에서도 당연히 가이드는 나였다. 이때도 어머니는 내가 곳곳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장면을 휴대전화에 남기셨다. 사실 영어권 국가가 아니면 영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건 매우 단순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이제는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외국어를 아들이 사용한다는 점이 당신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이후에도 가고 싶은 나라를 말할 때마다 '어차피 아들이 있으니까'란 문장을 종종 덧붙이신다. 실컷 키워서 소용있는 부분 중 '가이드' 기능이 지난날 경험들을 통해 습득하신 결과다.


이전까지 여행들은 모두 부모님의 지출로 이뤄진 무료 여행이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가이드란 책무를 아들로서 다하는 게 바로 당연한 것이다. 비로소 번듯한 직장인이 됐는데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국가들이 국경 문을 잠궈버린 탓에 효도는 하고 싶어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당당하게 댈 수 있는 셈이다.


상황 때문에도 실천할 수 없는 아쉬움이 이렇게나 큰데 있을 때 잘하란 옛말의 무게는 더없이 무겁겠구나 싶었다. 나도 책이나 TV 등에서만 들었던 말인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방문한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이 말을 해줬을 때 무언가 모를 충격을 전해받았다. 이만큼 커서 친구의 말을 다시 곱씹으니 어느정도 와닿는다. 시험을 치른 뒤 '어제 열심히 공부 좀 할 껄' 하는 후회와는 견줄 수 없는 것임을 이제는 알아가고 있기에 그렇다. 상황이든 의지든 결국엔 '하지 않았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뇌관이 될 게 뻔하니까.


나의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랜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원이 있다. 끝내 가지 않겠다고 버틴 내게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영끌로 보내주신 호주에 가족 모두가 방문하는 것이다.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릿지 등 관광지 방문도 중요하지만 부모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들은 따로 있다. 취재팀을 구성해 밤낮없이 회의를 하던 시청 앞 카페, 마음이 답답할 때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포장해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던 천문대 벤치 등이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내게 '가난해서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자식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는 일념을 실천해주셔서 지금의 아들이 있다는 감사가 아마 이 장소들을 방문해 내가 꺼네는 첫 마디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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