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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22. 2022

지나간 젊음이 가득한 스자실

똑같은 노트북을 펼쳤는데 나와 후배들이 해내야 하는 건 완전 다른 것, 그리움이 깔린 이질감의 시작이다. Paul 제공

오늘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 당직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팀 단톡방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알림을 울려댔다. 취재를 하나 마무리한 뒤 점심을 뭘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웬걸, 내 눈에는 아주 따사로운 햇빛이 걸려있는 거리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전에 가장 많이 본 뉴스는 지난 3년간 봉쇄된 여의도 거리가 개방된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일에 얽매여 있는 내가  한심하게 보였다. 밥벌이를 하려면 잠자코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데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날  없다는   서글펐다. 냉정한 현실 가운데 내가 선택할  있는  사람들이 가득 모인 카페로 나가는 것이었다.  소식을 친구놈에게 알리니 대뜸 "학교  카페로 가보라" 조언을 건네줬다. 이유를 물으니 "가보면  것이다" 뉘앙스를 풍겨주었다. 이건 오늘 학교 앞을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란 시그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옷장이 3개나 있다. 그런데 왜 옷을 잘 못입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좋아하는 것과 잘 입는 건 별개니까. 어쨌든 이리저리 옷을 골라 입은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이전과 다르게 착장 스타일이 바뀐 것을 인지하게 됐다. 예전엔 하루가 멀다하고 맨투맨과 후드티를 샀는데 이젠 아주 큰 옷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종류들을 입지 않고 있다. 괜스레 나이를 의식하게 되고 자리를 신경쓰게 된 결과다. "이 나이에 어떻게 이런 옷을 입어"라고 생각하면 되려 촌스러운 건데 말이다.


그래도 날이 좋으니 무슨 상관 있으랴. 일이 잔뜩 쌓였어도 후배들이 가득 모여있는 스자실(스타벅스+기자실)을 가는 발걸음은 꽤나 가벼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코로나19 탓에 볼 수 없었던 대학가 풍경을 한 눈에 접할 수 있었다. 학교 앞 카페가 여기 뿐인 건지, 모든 전공의 후배들이 다 내려온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내가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 된 것 같았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아메리카노를 그란데로 시켜 빈 자리에 털썩 앉았다.


발제를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취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축제는 어땠는데 지금 축제는 어떨 것이다, 전과를 했는데 미래가 썩 보장되지 않아 걱정이다, 잘 모르지만 친구는 이렇게 취업을 준비했다더라 등 으레 대학생들이 나눌 만한 대화가 주를 이뤘다. 아주 귀를 기울여 들은 건 아닌데 이같은 이야기들을 흘려서 듣고 있자니 무언가 모를 부러움이 내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차올랐다. 그땐 미처 몰랐다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을 보내는 그들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학생 때가 제일 빛나고 좋다는 어른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뼈저리게 와닿았다.


오늘 내게 학교 앞 카페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이 말을 해줬더니 "이제 그들의 시간 아니냐"는 답을 내줬다. 선배들이 내준 강의실을 우리가 썼고 또 그 강의실을 후배들이 차지하는 건 당연한 순리다. 이제는 학과 사무실이나 입학처에 선배 혹은 동기가 아닌 후배들의 머리수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같다. 오늘 카페에서 하하호호 웃음 소리들이 테이블마다 끊이지 않았는데 내가 점심시간에 선후배들과 웃는 소리와 결이 다르다는 걸 영락없이 깨닫는 순간, 되게 느렸다고 생각한 20대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가까이는 부모에게 더 나아가서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서도 허락을 받지 않고 행동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뾰족한 답을 얻어낸 건 아니지만 분명 이 행동들에 책임을 질 용기가 있어야 어른의 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생각된다. 마냥 그리운 시절만 돌아보며 '조금 더 놀아볼 껄' 후회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지난 주말 친구와 만나 선정했던 저녁 메뉴가 순댓국인 걸 떠올리면 나도 모르는 새 어른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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