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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12. 2022

10불이었던 그날의 육개장

외국에서 한식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된다. Paul 제공

호주 어학연수 시절 캐셔(cashier)로 파트타임(part-time)을 했었다. 출국 직후 두달 정도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꼬박 1년 동안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지(aussie)를 상대하면서 높은 급여를 받고, 그러면서도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점을 물색해 반년 정도를 일한 바 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던 어느날, 상점에 방앗간을 하는 할아버지 한분이 방문을 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응대를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별안간 업무를 마친 할아버지가 나를 상점 밖으로 불렀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5불을 꺼내 손에 쥐어주셨다. 갑작스러운 용돈에 놀란 나는 "뭘 이런 걸 주시냐"고 물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후 특정 요일이 되면 그 방앗간 할아버지는 내가 일하는 상점을 방문했고 꼭 돌아가시기 전 나를 불러 용돈을 주셨다. 용돈이라고 표현하기 머쓱할 정도로 작은 금액이었지만 여하튼 꼭 내 손에 돈을 건네주시고 자리를 떠나셨다. 그때마다 나는 이유를 물었고 할아버지는 그저 "허허"하며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이셨을 뿐이다. 난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살아계셨다면 손자를 향한 인자함은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찾아온 어느날도 역시나 할아버지는 상점 주인과 거래를 마친 뒤 나를 불러냈다. 쫄래쫄래 상점 밖으로 따라가니 할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지폐 한장을 꺼내 쥐어주셨다. 5불인가 싶었는데 웬걸, 10불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큰 금액을 주신 건 처음이라 한사코 만류를 했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아냐 괜찮아 넣어둬"라고 쿨하게 받아친 후에 타고 온 차를 몰고 떠나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마감시간이었던 터라 우선 남은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며 '왜 오늘은 10불이었을까' 생각을 이어갔다. 딱히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아 목적지를 찾아 들어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즈음 '짠'하고 10불에 대한 답변을 받게 됐다.


타지에서는 한식을 제값 주고 먹기가 어려워 큰 맘 먹고 한번씩 먹으면서 그리움을 달래곤 했었다. 매번 저녁으로 햄버거, 케밥 등을 먹어와 이날은 한식이 강하게 생각났었는데 새로 오픈한 한식당에서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 앞 세워진 입간판에는 할인 메뉴가 적혀있었고 내가 방문한 날은 육개장을 그렇게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딱 10불로 말이다.


가족 없이 밥을 해결하는 게 지쳤던 시기였는데 이날은 참 따뜻한 기억으로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내 삶을 이끄시는 윗분이 필요를 채워주신 것 같아 언제나 곱씹는 감사의 일화가 됐다. 꼭 이런 소회가 아니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한 청년에게 조건 없는 나눔을 실천한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여태 살아오신 당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선함이 묻었을까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다. 방앗간을 지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떡 한조각이라도 더 베풀었을 것이 분명했다.


사람인지라 무언가를 나눌 때면 조건을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다. 순간 스치는 '셈'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입버릇처럼 '지금 이 모습은 온전히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고 말하지만 그만큼의 베품을 현실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브런치를 통해 다시 한 번 곱씹었으니 10불보다 더 큰 필요를 나로 인해 채워야 하는 순간을 대비해 "주저는 없다" 우렁찬 목소리로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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