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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17. 2022

간절함을 지나왔는데

취준생을 벗어나 동료들과 카페를 찾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어느날. Paul 제공

업무가 대충 마무리된 퇴근 무렵 팀 간식을 먹으러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배와 나는 재빠르게 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별다른 일정이 없다'고 알린 바 있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보도국을 나와 회의실로 향했다. 저녁을 먹기 직전인 시간이라 간식을 먹으러 온 팀원들은 적었다. 우리도 그냥 자체 kill을 할까 고민하던 중 때마침 등장한 데스크를 마주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윽고 최근에 입사한 계약직 팀원 2명이 들어왔다. 회의실을 잠자코 지키던 데스크는 짖궂은 농담을 잇따라 던졌는데 하하호호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던 건 그 2명의 팀원 뿐이었다.


문득 언론사에 처음 발을 디뎠던 인턴 시절이 떠올랐다. 언론고시를 단 한번도 준비하지 않아 신문의 '신'도 알지 못했던 휴학생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요즘은 "노력하겠다"는 말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노력만 하지 말고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휴학생이 내공 있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이처럼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던 찰나에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전환형 인턴이 아니었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오늘날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휴학생에게 이 일화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데스크로부터 "폴, 기자가 정말 하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김칫국을 잔뜩 마신 나는 "설마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려고 그러나"란 상상을 마음껏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행운은 '시기'라는 운이 따라야 한다는 걸 인턴 기간을 통해 알게 됐다. 나를 포함한 인턴 동기들은 6개월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별다른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웬걸 우리가 퇴사할 때 즈음 들어온 한 동갑 친구가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입사한지 3개월이 막 지났을 무렵 정치부 인원 충원을 위해 채용이 필요했고 '멀리서 찾지 말자'는 보도국 기류에 따라 이 친구가 정규직 기자가 됐다. 인생 정말 모른다는 걸 알아차리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위에서 언급한 기회는 인턴보다 계약직일 때 찾아오기 쉽다. 난 한 종합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언론사에서 우후죽순으로 PD를 뽑을 때였다. 내가 있던 부서에도 현장 커버는 물론이고 기획 영상까지 제작하는 계약직 PD가 있었다. 이 PD는 정규직 전환이 없는 단순 1년 계약으로 입사한 바 있는데 1년을 채운 직후 정규직 전환이 됐다. PD는 앞으로 꼭 필요한 직군인데 굳이 새로운 사람을 계속 채용해 일을 0부터 다시 가르치는 건 소모적이라는 보도국 판단이 있었다. 기회가 없을 것 같은 길을 자신만의 페이스로 묵묵히 걸어가면 소기의 성과를 쟁취할 수 있다는 좋은 예시였다.


물론 이건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메이저 언론사를 비롯해 대기업에서 계약직을 채용하는 건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란 깊은 뜻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그 직군은 최대 2년 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공고에는 수백명 혹은 그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곤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준, '머슴 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입사지원서 경력란에 한줄이라도 추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청춘들의 현실인 셈이다. 나 역시 어려운 공채를 뚫을 자신이 없어 계약직을 줄지어 찾아봤었다. 경력을 n년차로 쌓을 수 있으니 되지 않는 공채 시험을 보러 다닌답시고 노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각종 취업 커뮤니티를 보면 계약직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취준생들이 수두룩하다. 이에 일단 일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지만 고용의 차이로부터 오는 설움엔 끝이 없음을 알게 된다. 나도 그렇지만 선배들을 보면 계약직 팀원이라고 하여 별도의 거리를 두지 않는다. 어쨌든 힘든 일을 같이 하는 동료가 아닌가. 하지만 회사가 차별을 만든다. 우리 회사를 예로 들어보면 복리후생 등 기본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계약직의 출입증 디자인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같은 또래가 많은 우리 팀이 회의를 할 때면 계약직 팀원들은 출입증을 뒤로 패용하고 들어온다. 어떤 곳은 사원증 목걸이 색도 다르다고 하니 직장 갑질을 잇달아 보도하는 언론사가 악습에 제일 먼저 앞서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로 돌아와 아까 그 간식 자리에서 데스크가 "회사로 자주 들어오는 게 어떻냐"는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나와 선배는 못들은 척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간식을 먹었다. 이내 질문의 화살은 계약직 팀원들에게 돌아갔는데 그들은 "회사에 매일 나오고 싶죠"란 답을 내놨다. 짧지 않은 취준 기간 동안 "제발 언론사에 내 책상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매일 했었는데 이젠 배부르고 등따수워 아쉬운 소리만 늘어 놓는구나 싶었다. 오늘도 선배와 점심을 먹으며 "이제 기자짓이 그저 돈을 버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됐다"는 한탄을 나눈 바 있어 더 그랬다. 사명이 무뎌져감을 경계해야 하는 건지, 으레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직장인이 되어야 할지 결론내리기 어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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