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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25. 2022

방치 당하는 안 당연함

즐거운 일은 없기 마련이지만 당직 순서가 다가올 때면 왠지 숨이 더 막히곤 한다. Paul 제공

몇달 전 한 선배와 점심을 먹은 바 있다. 점심시간이라 줄이 길게 늘어졌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때 다음주에 드디어 휴가라고 알린 선배는 "그래도 일이 터지면 들어와야지"라고 했다. 기자에게 휴가란 공식적으로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허울일 뿐 기사를 아예 쓰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진 않다. 자신이 맡은 출입처에서 이슈가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문득 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 재판 출석 당시 그 인근에서 휴가를 보내던 선배가 현장 취재를 간 일화가 떠올랐다.


정상적인 출퇴근은 기자를 처음 시작할 때 이미 포기했다. 스케줄 근무는 물론이고 언제 나타날 지 모르는 취재 대상을 위한 뻗치기의 연속에서 어떻게 '일반 직장인'이 될 수 있겠나. 현장을 가지 않더라도 기사에 필요한 멘트를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게 한세월이니 헛된 희망은 애저녁에 접어야 했다. 웬일로 정시 퇴근을 했어도 저녁 대기 당번이 걸린 날은 노트북을 옆에 두고 언제 울릴지 모르는 속보 알림을 기다리며 집콕을 한다. 그럼에도 아직 기자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다른 능력은 없어서"라는 답을 내놓겠다. 로스쿨을 다니거나 공인 노무사 시험을 통과하는 선배들처럼 머리가 좋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도 별 수 없이 내 당번이 돌아온 당직을 했다. 오래 전 짜여진 스케줄이지만 왜 하필 주말에, 그것도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정상회담을 하는 건지. 이왕 하는 거 좀 더 날이 좋을 때로 미루면 되지 않았나 잡다한 생각을 마음껏 해봤지만 그럴수록 일은 하기 싫어질 뿐이다. 감사하게도 예상과는 다르게 돌발 시위라든지, 연료 장전을 다 끝낸 북한의 미사일 발사 따위가 없었다. 예정된 일정에 맞춰 용산 청사로 도착한 뒤 회담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게 이토록 좋은 것이었다니. 물론 생중계 화면에 잡힌, 기자회견장 앞에 3줄 정도로 열을 맞춰 앉아 푸른 화면의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출입 기자들을 보며 심심한 위로를 보내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오후 6시까지 근무를 마쳤지만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최근 당직들의 동향을 언급하자면, 업무시간이 끝났음에도 기사 지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들의 만남이 회담 후에도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아 어떤 내용이든 기사를 쓰라고 할 것 같았다. 이 직업의 특성상 '융통성'은 미덕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데 이전의 내 글들을 따라왔다면 잘 알 것이다. 불합리가 유두리라고 강요하는 상황에서 당직 근무가 마친 뒤에도 강행하는 업무 지시를 계속 받아들인다면 이 문화(?)는 조만간 당연하게 자리잡을 게 뻔했다. 이에 '안 본 눈'을 시전하기 위해 팀 단톡 알람을 껐다. 그리고 저녁 약속을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7시반이 좀 넘었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의 수신을 받은 데스크는 "퇴근하고 일정을 하고 있냐" "밥을 먹고 있냐" 등 당연히 물어야 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딱 한마디, "톡 좀 봐"를 말했다. 난 "일을 마치고 저녁먹으로 나왔는데 노트북을 들고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데스크는 내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톡 몇개가 날라온 팀 단체방을 열어보니 평소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한 분야에서의 최신 소식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매체들은 작성하지 않았었고 출입이 아니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30분쯤 후 회사 단체방에 출입기자가 관련 내용을 전달해왔다. 그리고 몇분 뒤 다른 출입기자가 기사를 출고했다. 소동이랄 것도 없지만 이 기사가 출고되기 전까지 내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다. 퇴근을 했다면 당연히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야함을 강요당했기에 그렇다. 일이 마쳤음에도 노트북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당직 부서에서 그 이슈를 처리했다는 공을 갖고 싶은 건지. 두가지 마음은 당연히 있을 테고 언제든 시키면 기사가 나와야 한다는 것 또한 내재된 것임이 분명했다. 애먼 후배들의 속앓이가 날을 더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직장생활 다 그런 것이라는 불변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보다 더한 수모를 잇따라 겪었음에도 가정을 위해 묵묵히 버텨 어느새 정년을 앞둔 부모님을 보면 내 앞의 문제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는 급여를 받아도 나와 선배들이 내쉬는 한숨은 줄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을지 알길이 없다는 씁쓸함을 당연히 감내해야 해서 그런 걸까. 새삼 가족과 연인, 친구에게 불쑥 던지는 단어인 '존중'이 참 어렵고 무거운 책임의 범주 안에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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