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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11. 2022

내 마음먹기 나름

실감이 잘 나지 않는 해외여행은 비행기를 타기 직전 그 감정이 몰려오곤 한다. Paul 제공

어제 저녁 오랜만에 아버지 회사를 방문해 저녁을 먹은 바 있다.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 식사를 한지는 꽤 오래됐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자녀들이 장성하니 가정에는 '고정된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리 비싼 메뉴는 아니었으나 온가족이 둘러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가운데 아버지가 꺼내신 말에 관심이 갔다. 회사 경비 업무를 보시는 분은 매년 해외여행을 나가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코틀랜드로 2주일을 다녀온 뒤 기념품을 건네 받았단 것이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공항의 문을 잠궜던 각 나라들이 최근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항공기 운항 가능 수와 시간을 제한했다가 지난주 이 조처를 해제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잇따라 취재를 진행했었는데 국토부는 물론이고 여행사, 대사관 등에선 빠르게 회복될 여행 수요를 기대한다고 했다. 물론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하고 신속항원검사 등 여전히 방역정책들이 남아있긴 하다. 다만 2년 전 평범했던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드디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역시 늘고 있다. 그러나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드디어'란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회사에서 경비 업무를 보시는 분이 그렇다. 이 분은 올해 70을 바라보신다고 했다. 당연히 비행기 티켓과 숙소 등은 자녀들이 예약을 해주었겠으나 삼엄한 방문 국가의 방역정책을 뚫고 여행을 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소망만 품지 않고 실천한 아주 좋은 본보기였다.


유튜브만 접속하더라도 다시 해외여행을 재개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혹자는 "저들 만큼 일상을 보내는 많은 이는 여유가 있지 않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7일 넘게 휴가를 낸 뒤 코로나19에 얼마나 노출됐는지도 알 수 없는 국가를 방문해 여행을 즐길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코로나19에 확진된다면 짧지 않은 격리기간을 보내야 하는데 조만간 퇴사를 앞두고 있는 게 아닌 생업이라면 향후 쉽지 않은 직장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회사에 묶여있는 나 역시 거실에 있는 85인치 TV로 세계여행 유튜브를 큼지막하게 시청하며 부럽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정확히는 위로 쭈뼛쭈뼛 선 머리와 두꺼운 안경,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은 채 말이다. 어느 순간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에 접속해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다. 80여 만원에 갔던 호주 시드니가 200만원이 훌쩍 넘는 걸 보고 ‘그래 아직 아니야’라며 곧바로 플랫폼을 닫았지만. 이후 휴대전화 앨범 속 해외 장소들을 섭렵했다는 말도 덧붙여 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지 없는 내 모습이 곳곳에 있었다. 지난해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연차를 쓴 적이 없다. 이직의 이슈가 있었고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 수 있는 직업이어서 그런가. 선배들이 하나 둘 휴가 계획을 올리는 중이지만 나는 잠자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혹시 특별한 계획이 아직 없냐는 선배들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휴가를 말리는 이 아무도 없고 날짜를 정해 팀에 통보를 하면 되는데 왜 그 입이 안떨어지는 건지, 참 마음먹기 어렵다. 이후 월차 스케줄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나도 슬쩍 평일 하루를 정해 말을 얹었을 뿐이었다.


한낱 여행 추진의 여부를 두고 장황한 교훈을 얻었다 하지 않겠다. 그냥 어제 아버지에게 일화를 전해들으며 '어쨌든 행동하면 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대형 스타벅스 2층 창가에 노트북을 펼쳐 두고 줄지어 앉아 무언가를 위해 열심을 내는 대학생들을 멀찍이서 보며 더 그랬다. 직장인이 된 후에 성취란 단어를 딱히 쓰지 않으면서 어떠한 행동을 추진하는데 있어 굼뜨기만 하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저리주저리 남겨보자는 마음에 늘어지고 싶은 주말을 집이 아닌 카페에서 소비하고 있는 걸 선방했다 여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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